[메디카=AP/뉴시스] 5일(현지시각) 폴란드 메디카 국경 건널목에서 만난 우크라이나 난민 여성들이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메디카=AP/뉴시스] 5일(현지시각) 폴란드 메디카 국경 건널목에서 만난 우크라이나 난민 여성들이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두 달째 접어들고 있다. 최근에는 러시아군에 의해 민간인이 학살되고 여성들이 성폭력을 당했다는 소식이 연일 전해진다. 러시아군은 점령한 도시에서 민간인들을 가두고, 가족이 보는 앞에서 여성과 여아들을 집단으로 강간하며, 강간 후 살해하는 경우도 보도되고 있다. 피란길에 오르는 우크라이나 여성들은 자신을 보호할 도구로써 피임 도구와 가위를 챙기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 군인에게 머리채를 휘어 잡히지 않기 위해 숏컷으로 머리를 짧게 자른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우크라이나 여성들의 전시 성폭력 피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2014년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 내전 이후 친러 분리주의 반군들에 의한 성폭력 사례들이 보고됐다. 때로는 친정부군으로 부터 성폭력을 당한 사례도 접수됐다. 동우크라이나 사회문제센터(EUCCI)의 2017년 조사에 의하면, 조사 대상 남녀 300여 명 중 4분의 1 정도가 친러 성향 반군에 의해 성폭력을 당했다고 답했다. 이 지역에서 조사된 성폭력에는 강간, 강간 미수, 성기 전기 고문, 강제 성매매, 성노예, 성적 모독, 강제 발가벗김 등의 반인도적 행위들이 포함됐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성범죄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해 왔다. 다라 코헨(Dara Cohen) 하버드대 교수는 러시아군이 이전에도 전시 성범죄를 저질러 온 점과, 현재 러시아군의 25%가 용병으로 구성돼 있다는 점을 그 이유로 꼽았다. 미 국토안보부 반테러연구소(NCITE)의 오스틴 닥터(Austin Doctor) 소장에 의하면 용병과 외국인 의용군으로 구성된 군대의 경우, 내부 결속력과 신뢰를 도모하기 위한 도구로 집단 강간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이러한 전문가들의 분석을 통해 볼 때, 안타깝게도 러시아군이 점령했던 지역에서의 전시 성폭력피해는 당분간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나아가 전쟁은 끝날지라도 성폭력 피해자들의 몸과 마음에 새겨진 상처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폭력을 멈출 방법은 과연 없는 것일까? 국제인권법, 국제인도법, 국제형사법은 모두 강간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성폭력과 반인륜적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특히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관한 로마 규정 제8항은 강간, 성노예, 강제 성매매, 강제 임신, 강제 피임 등을 전쟁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 법을 이용해 성범죄를 저지른 러시아 군인을 처벌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최근 ICC는 우크라이나 내 성범죄 사례에 대한 조사를 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ICC가 설립된 이후 법리적인 증명의 어려움으로 인해 전시 강간에 대해 최종적으로 유죄 판결을 내린 사례는 아직 한 건도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암울한 상황에서도 한 가닥의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전시 중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크라이나 내에서는 풀뿌리 여성단체들이 활동하고 있다. 지난 3월 실시된 유엔여성기구(UN Women)의 긴급 조사에 의하면, 조사에 응한 67개의 단체 중 약 절반 정도는 교전으로 인한 제약에도 불구하고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고 답하였다. 지난 2월 전쟁이 발발하자 이 단체들은 긴급 인도적 지원을 시행하고, 성폭력 피해 사례를 접수하고 기록하며, 피해 여성들을 지원하는 일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 캐나다, 네덜란드, 독일 등의 공여국 원조기관들은 지난 수 년 동안 우크라이나 내 여성단체들에 자금을 지원해 오고 있으며, 유엔은 성폭력 실태조사와 모니터링 등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현실을 기록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블로드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4월 11일 대한민국 국회에서 화상 연설을 통해 러시아 침공의 참상을 알리고, 한국 정부의 지원에 감사하며, 국제사회와 함께 우크라이나와 연대해 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앞으로는 우리 정부가 우크라이나 내의 여성단체도 지원함으로써 전시 성폭력 피해 여성을 도울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나아가 우리 시민단체들도 다양한 방식으로 우크라이나 여성들과 연대하고 옹호의 목소리를 내주면 좋겠다.

돌이켜 보면 대한민국은 전 세계 그 어느 국가보다 전시 성범죄에 대한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나라 아니던가. 그 참혹함을 이미 겪어 보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미 우리와 우크라이나와의 연대는 시작됐다.

장은하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국제개발협력센터장
장은하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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