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남자라면 군대는 가야지”
당연한 군필? 평화주의로 새로 고침!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저자 김초엽,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저자 홍세화 추천!
20세기까지 여호와의증인 신자들을 중심으로 이뤄져오던 병역거부는 21세기의 시작과 함께 그 기반이 대폭 확장되었다. 2001년, 종교가 아닌 양심의 자유를 말하며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긴 오태양의 병역거부는 순식간에 병역거부를 둘러싼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간 특정 종교인의 예외적인 행동으로 여겨졌던 병역거부는 오태양의 등장과 함께 인권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말이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다. 이 책은 바로 그 시기부터 지금까지의 20여 년을 평화주의 시선으로 살피며, 수많은 병역거부선언이 한국 사회에 어떤 질문을 던졌는지 파고든다.
저자는 2003년 창립한 평화운동 단체 전쟁없는세상의 창립 멤버이자 2005년 병역거부를 한 당사자이며, 병역거부운동의 시작과 현재를 함께하고 있는 19년 차 평화활동가다. 저자는 병역거부를 하는 개인으로서의 고민과 병역거부운동을 하는 평화활동가로서의 고민을 다면적으로 아우르며 군사주의 사회의 폭력성을 사유하고 기록했다. 이를 통해 병역거부가 단지 ‘군대에 가지 않을 자유’를 논하는 문제가 아님을 설득한다.
병역거부 다시 보기: 군사주의 바깥을 상상하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의심과 혐오를 거두지 못한 채 병역거부자를 바라본다. 그 시선은 이런 말들로 발화될 것이다. “안보의 무임승차자!” “남자답지 못한 놈, 겁쟁이!” “양심적 병역거부? 도대체 양심이 뭐야?” “비폭력 평화라니, 휴전 중인 나라에서 너무 이상적인 소리 아니야?”
이러한 물음표들은 ‘강력한 군대가 평화를 지킨다’는 군사주의적 안보의식에 기인한다. 군사주의적 안보의식이 팽배한 사회에서 병역거부자들이 말하는 양심, 비폭력, 반군사주의, 시민불복종은 ‘뜬구름 잡는’ 소리로 여겨지고, 병역거부는 순식간에 ‘기피’와 동의어가 된다. 대한민국 헌법은 누구나 각자의 윤리의식과 사상에 따라 자신의 양심을 지킬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지만, 군사주의 안보의식이 ‘당연한’ 사회는 총을 들지 않을 양심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대체복무제가 시행된 2020년 이전까지, 병역거부자는 ‘범법자’ ‘비겁자’로 낙인찍히며 감옥으로 향했다.
저자는 자신 역시 병역거부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비폭력이나 양심, 반군사주의나 시민불복종으로서의 병역거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우연히 병역거부운동을 시작했지만 자신에게도 “군대 문제는 마냥 미뤄두고 싶은 숙제”였다는 것이다. 당연히 처음부터 병역거부를 결심하지도 못했다. 이에 따라 책에는 꽤 오랫동안 비폭력과 양심이 무엇인지를 고민했던 저자가 내린 답이 친근한 서술로 정리되어 있고, ‘군사주의에 저항하는 시민불복종’으로서의 병역거부를 깨닫게 되는 생생한 순간 또한 그대로 담겨 있다.
비폭력이나 양심이 무엇인지도 잘 모른 채 우연히 병역거부운동을 시작한 저자는 이 책 안에서 병역거부가 평화운동임을 깨닫고, 이를 실천해 감옥에 수감되고, 무기산업 등 다른 문제로도 시야를 확장하며, 계속해서 더 많은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다. 그리하여 대체복무제 도입이라는 큰 성취를 마주하면서도, 냉정한 시각으로 그 이후를 고민한다. 저자의 이야기에 담긴 이러한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군사주의 바깥을 상상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게 된다.
병역거부의 역사: 평화에 대한 상상력이 확장되어온 발자취
저자는 2001년 오태양, 2003년 강철민의 병역거부를 두 눈으로 마주하며 군사주의 바깥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살인과 폭력을 훈련하고, 폭력에 더 강한 폭력으로 맞서는 일은 정말 ‘평화’를 위한 것일까? 군사주의는 안보의 유일한 방법일까? 저자가 품고 있던 그러한 의심에 행동으로 답을 보여주는 병역거부자들의 등장은 그에게 일종의 ‘확신’으로 다가왔다.
한국 병역거부운동의 초창기부터 함께한 저자는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이해하고자 과거를 살핀다. 놀랍게도 일제강점기에서 한국전쟁, 유신시대, 전두환-노태우 정권을 거쳐 1990년대 중후반과 21세기에 이르기까지 병역거부자는 끊임없이 존재해왔고, 저자는 이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언급하며 병역거부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들려준다.
1990년대부터 병역거부는 불교나 가톨릭교, 기독교 등 여러 종교인들로 이어지며 종교계 내에서 먼저 확장되었다. 200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평화주의, 퀴어페미니즘, 남성성에 대한 성찰, 군대의 폭력성과 공권력의 무책임함에 대한 저항 등으로 그 의미가 더욱 확장된다. 병역거부자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언어’로 병역을 거부하며 한국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폭력과 차별을 폭로했다.
1990년대까지의 인물들을 책과 자료에서 찾아냈다면, 2001년부터 현재까지는 저자가 직접 만나고 마주한 인물들이다. 병역거부의 역사 속에서 어느 순간 자신도 한 장면을 이루어 온몸으로 부딪친 사람의 이야기에는 생동감이 가득하다. 김초엽(『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저자)의 추천사처럼, 병역거부자와 평화활동가들의 행동에는 ‘비폭력 평화, 그런 게 가능하겠어?’라는 “냉소를 무너뜨리는 힘이 있다”.
“사회운동이 세상의 변화를 이끈다”
단, 운동의 한계를 성찰하며 나아갈 때
저자가 활동하는 전쟁없는세상은 병역거부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2003년부터 2018년 상반기까지 매년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각종 활동을 끊임없이 이어왔고, 무기거래 감시활동 등 궁극적으로 전쟁을 끝내기 위한 여러 활동에 나선 것도 모두 전쟁없는세상의 평화운동이다.
저자는 “한국 사회에서 민감한 문제인 징병제와 군사안보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직접행동”인 병역거부가 시작부터 대중적인 지지를 받기는 어려웠다고 말하는데, 실제로 당시 진보적인 사람들에게조차 “그래도 군대는 가야지”라는 지청구를 듣는 일이 많았다고 회상한다. 병역거부에 대한 사회적 반감이 너무 큰 상황에서도 전쟁없는세상은 거리로 나가 병역거부를 반대하거나 오해하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며 계속해서 대화를 시도하고 설득했다.
당시 앞장서서 병역거부운동을 옹호하고 이 책에도 추천의 말을 보탠 홍세화(『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저자)의 말처럼, “전쟁없는세상이 없었다면 대체복무제는 아직 우리의 사회적 획득물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저자는 “병역거부는 선언인 동시에 말 걸기”였다고 말하며, 조금씩 인식이 바뀌고 결국 대체복무제 도입이라는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낸 것을 병역거부운동의 분명한 성과로 서술한다.
그러나 저자는 운동의 성과를 서술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지면을 운동의 한계와 문제점을 성찰하는 데 할애했다. 병역거부자 남성만 ‘영웅’으로 부각되고 여성 활동가는 ‘조력자’로 인식되는 문제, 병역거부자의 대다수가 중산계급에 고학력자라는 점, 남성연대를 꾀했던 초기 병역거부운동 전략의 한계 등 운동의 안팎을 막론하고 적지 않은 문제들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의 곳곳에서 이러한 문제들을 촘촘히 짚어내며 누군가를 배제하거나 위계를 만들지 않는 방식으로 평화운동을 이어가기 위한 고민 또한 담아냈다.
“평화를 향한 갈망과 의심을 동시에 품은 모두에게”
군대와 전쟁을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는 군사주의적 안보의식은 평화에 대한 상상력을 제한한다. 단적인 예로 군사주의와 폭력을 거부하는 병역거부자를 사회적 책임을 거부하는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선이다. 이는 군대의 열악한 복지, 폭력성, 부당한 업무 지시 등 군 내 인권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국가를 향해야 할 분노가 엉뚱하게도 반군사주의를 외치는 병역거부자들을 향하게 만들기도 한다.
한편, 한국은 전쟁산업에서 점점 더 덩치를 키워가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방비를 쓰는 10개국에 7년 연속으로 포함되었고, 무기수출 점유율에서도 세계 10위를 기록 중이며, 그 점유율이 가장 가파르게 상승하는 국가다. 한국산 무기와 시위 진압 장비는 바레인, 예멘, 태국, 인도네시아 파푸아바랏 등지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협하고 더러는 시민들의 목숨까지 빼앗고 있다.” (129~130쪽)
강한 군사력은 정말 평화를 위한 유일한 방법일까? 군비경쟁 가속화와 무기산업의 가파른 성장은 세계 평화에 기여하고 있을까? 정확히 말하자. 폭력에 맞서는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일 뿐 평화가 아니다. ‘비폭력 평화, 말은 좋지. 근데 그게 가능하겠어?’ 갈망하면서도 회의하고 있다면, 이 책을 읽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