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5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하지 말아라. 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네 상을 이미 다 받았다. 6너는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서, 숨어서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리하면 숨어서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7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방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말아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만 들어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8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아라.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계신다. 9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 이름을 거룩하게 하여 주시며, 10그 나라를 오게 하여 주시며, 그 뜻을 하늘에서 이루심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주십시오. 11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내려 주시고, 12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13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여 주십시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마6:5-13)

가을은 기도와 성찰의 계절

오늘은 창조절 열한 번째 주일이자 11월의 둘째 주일입니다. 계절적으로는 완연한 가을을 지나 늦가을로 향하고 있습니다. 가을이 되면 생각나는 시가 있습니다. 교과서에 오랫동안 실릴 만큼 모두가 잘 아는 유명한 시입니다. 바로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라는 시입니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게 하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구비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목사인 아버지와 형의 영향으로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김현승 시인은 신앙을 바탕으로 인간 내면의 본질을 깊이 탐구하고 성찰하는 시를 많이 썼습니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하는 이 시구에서 깊어가는 가을 풍경을 보며 인간 내면을 성찰하고 진실하게 기도하고자 하는 그의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가을이 지나갈 무렵, 나무는 비움의 시간을 갖습니다. 봄철에 피운 화려한 꽃과 무성히 뻗었던 가지와 잎들, 풍성히 맺었던 열매까지 하나둘 모두 떨구고 나면 나무는 그 자체, 나무의 그 본질로 돌아가 깊이 집중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겸손히 자신을 비우고 성찰하는 시간, 생명의 본질로 돌아가 내면 성숙의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아마도 비우지 않으면 긴 겨울 내리는 추위와 눈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다는 자연의 순리를 나무는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신앙인들도 자신의 행위와 바램, 활동과 계획 등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는 비움과 성찰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앞서 소개한 김현승 시인은 이런 의미에서 가을은 기도와 성찰의 시간이 가져야 한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게 하는 주의기도

기독교 신앙인들을 다시금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바로 주의기도입니다. 주의기도는 우리의 바람과 욕구, 욕망으로 얼룩진 기도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주님의 기도를 통해 우리의 신앙을 성찰하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 한복판에는 이 기도가 자리 잡고 있고, 우리가 온전하고 건강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 주의기도를 깊이 새기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주의기도는 “그리스도교 역사상 가장 중요한 기도”로 여겨져 왔습니다. 초기 기독교 사상가로 유명한 성 어거스틴은 “제대로 기도하고 있다면, 기도 중에 무엇을 말하든 이미 주의기도 안에 담긴 것을 말하는 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사상가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주의기도를 “가장 완전한 기도”라고 불렀고,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주의기도를 “기독교의 모범 기도문”이라고 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주의기도가 다른 시간과 공간을 넘어 이 기도를 드린 모든 그리스도인을 하나로 묶어준다는 사실입니다. 초대교회를 이루었던 신자들로부터, 오늘날 매주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신자들까지 2000년의 시간을 넘어 함께 같은 기도를 드린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2000년의 시간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공간을 통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예배를 드리는 우리뿐만 아니라 로마 가톨릭이나 동방 정교회, 성공회나 개신교 할 것 없이, 개신교 안에서도 교리와 교파로 갈린 수많은 교회 할 것 없이 수많은 사람이 주일이면 교회에서 같은 주의기도를 드린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되는 희망을 품게 합니다.

주의기도를 통해 우리 마음은 주님의 마음을 닮고 우리 삶은 주님의 삶을 닮아 갑니다. 그것이 진정한 기도의 힘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주기도를 자주 암송하면서도 그 정신을 묵상하고 실천하기를 힘쓰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에서 주기도는 매우 형식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좀처럼 주의기도에 담긴 뜻을 알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늘 암송하는 기도이기 때문에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우리 교회는 지난 하반기부터 수요성경공부로 존 도미닉 크로산의 <가장 위대한 기도>라는 책으로 주의기도에 대해 함께 공부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을 통해서 그 내용을 다 전할 수는 없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이 가을의 계절에 주의기도를 통해 우리의 신앙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위선적이고 주술적으로 기도하지 말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 말씀은 우리가 잘 암송하고 있는 마태복음 <주의기도>의 본문입니다. 예수님의 산상설교가 담겨 있는 마태복음 5장에서 7장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서 참된 제자도를 설명하고 있는 산상설교의 핵심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진정한 기도의 태도와 방법에 대해 일깨워 주고 계십니다.

먼저 본문 5절에서 예수님은 ‘위선자들’처럼 기도하지 말라 하십니다. 복음서에서 ‘위선자들’은 주로 바리새파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특별한 사람이라 구별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기도’를 ‘형식화’했습니다. 기도문을 잘 만들어 다듬고, 기도하는 자세도 고안했습니다. 그들이 만들어 낸 기도문은 훌륭했고, 기도하는 자세는 너무도 경건해 보였습니다. 그들이 기도를 의무로 정했고, 그 의무를 넘치도록 실행했습니다. 이만하면 이들의 신앙은 정말 훌륭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 기도의 위선과 허위를 갈파하셨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실상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들’을 향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7절에 ‘이방인들’처럼 기도하지 말라 하십니다. 그들은 기도를 ‘신들을 감동시키는 기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헬라 시인과 철학자들은 온갖 찬사와 아첨으로 가득 채운 현란한 기도문을 만들었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인간은 물론 하늘의 신들도 꼼짝없이 사로잡을 만큼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러니 ’반신반인‘인 황제의 마음을 살 수 있었겠지요. 또한, 로마 세계의 변방 각처에서 올라온 여러 토속 종교들은 기도를 마술적 주술로 삼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뜻 없이 중언부언하는 빈말의 기도를 경계하셨습니다.

이렇게 위선적인 기도와 주술적인 기도를 경계하시면서 가르쳐 주신 것이 주의 기도입니다. 그런데 기도란 무엇일까요? 어떻게 기도하느냐는 것은 결국 어떻게 사느냐는 문제 아닐까요? 기도는 신앙생활의 한 도구가 아니라, 전 신앙의 문제요, 전 삶의 문제입니다. ‘주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과 나라를 구하며,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세워나가는, 우리의 기도입니다. 주의 기도는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의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 이름을 거룩하게 하여 주시며, 그 나라를 오게 하여 주시며,

그 뜻을 하늘에서 이루심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주십시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내려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여 주십시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먼저 부름 문구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살펴보면 우리가 흔히 ‘아버지’라는 용어 때문에 남성 신으로서 하나님의 이미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여기에서 아버지는 남성, 여성으로서가 아닌 온 세상을 책임지고 보살피고 먹이는 대가족의 가장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창조자이자 보호자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가장으로서 우리를 자녀 삼아 주시고, 공평하게 사랑을 나눠주시어 보살피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 부를 때 우리를 “공동상속자” 세워주셔서 하나님의 뜻에 우리를 동참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하는 부름 문구에 이어지는 내용은 나름대로 짜임새 있는 형식을 갖추고 있는데, 먼저 전반부에 하나님과 관련된 세 개의 청원 “이름”, “나라”, “뜻”이 나오고, 후반부에는 우리와 관련된 세 개의 청원 “필요한 양식”, “죄(또는 빚)”, “시험”으로 이어지는 병행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앞에 하늘의 계신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과 관련된 세 개의 청원이 땅에 있는 우리의 세 개의 청원과 병행구조를 이룸과 동시에 하늘과 땅이 포개져 만나는 것처럼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짐을 통해서 하나님을 향한 청원과 우리를 향한 청원이 하나로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가장 위대한 기도>를 통해 주의기도를 해설하고 있는 존 도미닉 크로산은 이러한 주의기도 형식이 이스라엘 성서 시(詩) 문학 전통을 따르고 있고, 그 핵심적 내용도 이스라엘의 성서 전통의 핵심인 분배적 정의를 선포하고 있어서 주의 기도를 혁명적인 선언이자 희망의 찬가라고 부릅니다. 쉽게 말하자면 주의기도에 온 세상을 보살피시는 가장이신 하나님께서 분배적 정의를 실현하시는 비전과 뜻이 담겨 있어서 우리가 주의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그 뜻에 동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주, 그리고 열심히 기도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는 나만을 향할 때가 많습니다. 나의 문제, 나의 필요와 요구를 위해서 우리는 자주 기도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위한 기도는 소홀할 때가 많습니다. 지난 주중에 미얀마 민주주의와 인권회복을 위한 목요기도회가 미얀마 대사관 앞에서 현장 기도회로 진행되었습니다. 기도회에서 한국에서 활동 중인 미얀마 청년의 현장 증언을 들으며 마치 미얀마의 문제가 해결된 양 살아온 저의 모습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미얀마 쿠데타가 뉴스에 연일 보도되었을 때 우리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를 드렸지만 이제 더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변에서 고난당하는 이들의 아픔도 나의 눈에서, 나의 관심에서 멀어지면서 모른 체하고 살 때가 많습니다. 지난주 전태일 51주기 기도회가 있었습니다만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수많은 젊은 노동자들이 하청노동 현장에서, 배달노동 현장에서, 또는 빈곤으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시선을 돌려 주변을 바라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나의 문제, 나의 관심에 매몰되고 맙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거리로, 현장으로 나가 우리의 이웃들과 함께하고자 노력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주의기도를 닮아가야 합니다. 나의 문제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오늘 "나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소서가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소서 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일용할 양식을 공급받는 분배적 정의가 실현되는 세상, 그 하나님 나라가 실현되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거나 너무 흔한 것의 존재를 자주 망각하게 됩니다. 주의 기도도 너무 자주 외우기 때문에 그 뜻이 우리의 마음을 자극하여 삶을 성찰하게 하는 기도가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주의 기도에 있는 내용을 완전히 무시하는 삶을 살면서, 때가 되면 열심히 기도문을 외웁니다. 우루과이의 한 작은 성당 벽에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라는 작은 글귀가 쓰여있다고 합니다. 이 짧은 글귀가 오늘 우리 기독교인들의 기도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지 말아라.

세상 일에만 빠져 있으면서.

“우리” 하지 말아라.

너 혼자만 생각하며 살아가면서.

“아버지” 하지 말아라.

아들 딸로서 살지 않으면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하지 말아라.

자기 이름을 빛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면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하지 말아라.

물질만능의 나라를 원하면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하지 말아라.

내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면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하지 말아라.

가난한 이들을 본체만체 하면서.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하지 말아라.

누구에겐가 아직도 앙심을 품고 있으면서.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하지 말아라.

죄 지을 기회를 찾아 다니면서.

“악에서 구하소서” 하지 말아라.

악을 보고도 아무런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

“아멘” 하지 말아라.

주님의 기도를 진정 나의 기도로 바치지 않으면서.

위의 글에서처럼 우리는 때때로 주의 기도를 나의 기도로 바꾸어 생각합니다. 입으로는 주의 기도를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현실과 타협하거나 부패한 현실 속에 빠져 있기도 합니다. 주의 기도를 제대로 드린다면, 우리 삶은 더는 전과 같을 수 없습니다. 그 변화가 우리의 옛사람에게는 크나큰 위험이고 위협입니다. 옛사람이 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주의 기도는 또한 가장 위대한 기도입니다. 우리 삶에 진정한 소망을 이끌어 오기 때문입니다.

<가장 위험한 기도, 주기도>라는 책을 저술한 김영봉 목사님은 그에 책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기도 안에 그 사람이 담겨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에 있는 것이 기도에 담기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보면 그 사람이 보입니다. 무엇을 고민

하고 있으며, 무엇을 목표로 살고 있고, 무엇을 귀하여 여기는 지를 알 수 있습니다. ... 주기도에는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 안에는 또한 당신을 믿는 사람들의 마음에 담기기를 바라시는 것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기도문이 우리에게 소중합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시려는 모든 말씀이 이 기도문 안에 수정처럼 농축되어 있습니다.

최후의 순간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생각해봅니다. 예수께서는 겟세마네에서 피땀을 흘리며 자신을 사형장으로 그리고 파탄으로 이끌어 갈 자신의 운명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찌 되었든지’ ‘자기 자신의’ 인생 설계를 관철하고 싶어서 하느님과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할 수만 있으면 고난 없이, 십자가의 죽음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메시아의 직무를 완수하고 싶어서 싸우시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는 자신의 뜻이 그와 아버지 사이에 끼어들지 못하도록 싸우시는 것입니다. 예수는 아버지와 자신 사이에 연결된 끈을 잃어버릴까 봐 싸우시는 것입니다. 결국, 영혼 속에서 벌어지는 이 투쟁은 ‘내 뜻이 아니라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는 말씀으로 끝맺습니다.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는 우리의 옛 삶에 대한 부정인 동시에 새 삶의 출발점입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이 기도를 드리면, ‘아멘’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은 같을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맑아진 영혼은 세상을 꿰뚫어 보는 안광으로 빛나고, 세상을 이길 힘으로 넉넉해지지 않겠습니까?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는 그리스도인들이 각종 모임을 마칠 때 사용하는 편리한 종결어미가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앙의 토대요 지향점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제 우리의 기도는 진정한 마음으로 말 한마디 한마디에 간절한 소망을 담아서 드립시다. 기도는 입으로 나오지만 온 마음과 온몸으로 드리는 우리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온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주님의 기도를 드린다면 우리는 변화된 존재가 될 것입니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는 주님의 음성이 여러분과 함께하고, 주의기도를 통해 신앙이 날마다 새로워지는 경험을 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