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장들 쌈짓돈 된 시·도의회 분담금

2022-06-29 11:48:02 게재

의장협의회 시·도에 천만원씩 나눠줘

일부 의장들 개인 업무추진비로 사용

운영위원장에 350만원씩 '입막음용'

전국 시·도의회 의장들이 시도가 분담한 의장협의회 예산 일부를 나눠 쓴 사실이 내일신문 취재결과 드러났다. 시·도별 연간 1000만~1500만원을 사실상 의장의 쌈짓돈처럼 써온 것이다.


28일 대한민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와 전국 시·도의회에 따르면 협의회는 시·도에서 걷은 분담금 일부를 17개 시·도 의회에 '지방분권 강화 정책사업비' 명목으로 되돌려줬다. 회장(서울시의회 의장)과 사무총장(울산시의회 의장)을 맡고 있는 시·도의회에는 1500만원, 나머지 15개 의회에는 1000만원씩을 배분했다. 정책사업비는 지방분권 강화를 위한 홍보나 의원 간담회 등에 사용하도록 했다. 협의회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로 의장단이 모일 기회가 없다보니 의장들에게 정책사업비를 배분해 쓰도록 한 것"이라며 "모두 사용 목적에 맞게 썼고, 회계처리도 명확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도의회 이야기는 이와는 다르다. 이 예산의 정확한 사용처를 아는 시·도의회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 시·도 의장들이 쌈짓돈처럼 사용해 왔다는 것이 의회 사무처들의 설명이다. 인천시의회 관계자는 "의회 사무처와 의원들 대부분이 이 예산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며 "의장 개인 비서가 카드를 관리하기 때문에 사용처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인천시의회 의장은 올해 예산 1000만원 중 673만원을 사용했다.

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서울시의회도 상황은 비슷하다. 서울시의회 관계자는 "처음부터 사용처를 묻지 않는 예산이기 때문에 문제가 될 소지가 많다"며 "서울시의회 의장이 사용한 500여만원의 용처 역시 시의회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경북도의회는 이 돈의 성격을 아예 업무추진비라고 말했다. 경북도의회 관계자는 "연간 분담금 1억4800만원 가운데 남은 예산을 일괄 나눠 준 것으로 안다"며 "연초 1000만원을 받았고 의장 업무추진비처럼 사용했다"고 말했다. 경북도의회 의장은 1000만원 중 이미 954만원을 사용했다.

일부 시·도의회 의장들은 이 돈을 사용하는 걸 부담스러워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부산·광주·강원 의장들은 이 예산을 받고도 상반기 중 한 푼도 사용하지 않았다. 한 광역의회 관계자는 "예산이 문제될 소지가 많다"며 "의장이 구설에 오를 것을 우려해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협의회는 3년 전부터 이 예산을 집행해왔다. 의장들이 모여 예산 배분을 결정한 것이다. 협의회는 또 시·도의회 운영위원장들이 예산 집행 사실을 뒤늦게 알고 항의하자 입막음용으로 운영위원장 몫의 정책사업비를 별도로 배분했다. 각 시·도의회 운영위원장에게 의장과 같은 방식으로 350만원씩을 나눠준 것이다. 시·도의회 운영위원장협의회는 실무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의장협의회에 소속돼 있다.

한 광역의회 간부공무원은 "의장들이 예산을 나눠 쓴다는 사실을 알고 운영위원장들이 항의하자 올해 처음으로 350만원씩 나눠줬다"며 "우리는 문제될 소지가 있어 사회단체에 기부했지만, 일부는 의장들처럼 업무추진비로 사용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광역의회 간부는 "협의회는 시·도 의장들이 사용한 예산의 사용처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며 "필요하다면 수사의뢰를 해서라도 부당한 예산 집행이 있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곽재우 최세호 방국진 이제형 윤여운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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