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지기 쉬운 영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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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지금 여기 가장 영향력 있는 멕시코계 미국 이민 2세대 작가
에리카 산체스의 삶과 생존, 회복과 재탄생에 관한 고백
미국은 인종 구성의 과도기에 있다. 2045년에는 미국 내 백인 비율이 50퍼센트 이하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매해 인종다양성이 주요한 화두에 오르고 있지만, 인종차별은 아직도 존재한다. 제45대 미국 대통령이었던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슬로건 아래 이민자들을 배척하고 불법 이민자를 막겠다며 미국-멕시코 국경 장벽을 건설하려 했다. 이런 정치적 메시지로 인해 이민자와 유색인종에 대한 타자화는 더욱 심화되었고 증오범죄 또한 늘어났다. 오늘날 미국 내에서 유색인 이민자들은 이제 사회의 구성원이자 필수적인 존재지만 여전히 수많은 차별을 마주하고 있다.
멕시코 이주노동자의 딸인 에리카 산체스는 자신을 대수롭지 않은 존재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아무도 자신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저 쓰다 버릴 하찮은 존재로 여길 것이라고 느꼈다. 어린 그의 눈에는 삶의 본보기가 되어줄 사람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에리카는 고독 속에서 글을 쓴 여성 작가, 특히 유색인 여성 작가의 책을 읽으며 힘을 얻었다. 그리고 자신도 그런 여성 작가의 계보 속에 자리하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이 책은 폭력과 위협, 무시와 폄하를 견디며 생존해야 했던 한 히스패닉 여성이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기록이다. 또한 미국에서 이민자 2세대 유색인 여성이자 정신질환 당사자로 살며 경험한 복잡한 고통과 그로 인해 무너진 삶, 그리고 그 삶을 재건한 이야기다.
작가정보
Erika Sanchez
시인이자 소설가, 이민자의 딸. 일리노이주 시서로의 멕시코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스페인어와 영어를 이중 언어로 구사하며 자랐다. 일리노이주립대학교와 뉴멕시코대학교에서 문학을 공부한 후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시와 소설 쓰기를 가르쳤고, 현재 드폴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7년에 시집 《추방의 교훈Lessons on expulsion》을 출간하며 작가의 삶을 시작했다. 같은 해 출간한 장편소설 《나는 완벽한 멕시코 딸이 아니야》는 멕시코계 미국인 여성의 정체성을 드러낸 자전적 소설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되어 수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았고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대학에서 의류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시민사회 운동을 공부했다. 번역 자원 활동을 하던 시민단체에서 상근 활동가로 일하며 출판 번역을 시작했다. 옮긴 책으로 《풍요의 시대, 무엇이 가난인가》, 《교도소 대학》, 《나무를 대신해 말하기》 등이 있다.
목차
- 우리의 이야기는 중요하다
나의 질이 망가졌던 해
광대 되기
모국으로 돌아가다
라 말라 비다 LA MALA VIDA
본인이 예쁘다고 생각하세요? 예 아니오에 표시하세요
욕실에서 울다
즐기는 게 좋아
타오르는 태양이 싫어
나는 완벽한 멕시코 엄마가 아니야
감사의 말
추천의 말_이토록 불완전함에 감탄하며 (하미나)
옮긴이의 말
추천사
-
자신의 웃음소리조차 무례하게 여겨지는 세상에서 살아남은 여성, 우울과 자살 사고에 시달리면서도 한 편의 시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 살아남은 여성, 끝내 자신의 이야기를 먼 곳까지 도달하게 하는 데 성공한 여성, 불완전함을 숨기는 대신 드러내며 자신의 내면세계를 지켜낸 이 여성에게 감탄하지 않는 법을 나는 알지 못한다.
책 속으로
우리에게 회복력이란 고결한 특성이라기보다는 억압받으며 강요당하는 삶의 방식이다. 적응하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다. (7-8쪽)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확신했고, 2005년이었으며, 섹스가 (심지어 가벼운 수준이라도) 그 자체로 악하거나 부도덕하지 않다고 알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하느님이나 우주가, 아니 어쩌면 저세상에 계신 경건한 여성 조상님들이 감히 섹스를 한 나를 벌주는 거라고 믿었다. 나는 코치나cochina, 더러운 년이었다. (12-13쪽)
‘히스테리hysteria’라는 단어가 ‘떠돌아다니는 자궁’이라는 뜻인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가 기억난다. 내 자궁이 마치 유령처럼 몸속을 떠돌아다니는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터졌다. 내가 겪는 일도 구시대적 전통의 연장선에 있었다. 여성의 통증은 언제나 지나치게 단순화되고 무시되었다. 이해되지 않는 것은 쉽게 감정적인 문제로 치부된다. 그해에는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나의 고통은 정체가 없었다. (36쪽)
멕시코인들은 마치 도덕적 의무라도 되는 듯이 농담을 해댄다. 고난에 익숙해지면 이렇게 되는 것 같다. 정신을 놓지 않으려고 유머에 의지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분명 제일 심하게 억압받는 사람이 언제나 제일 웃긴다. 이 주장을 증명할 실증적 증거는 없지만 정말이다. 코미디언 크리스 록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 있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부유한 사람보다 더 많이 웃습니다. 특히 흑인들은 발을 구르며 웃지요.” (46쪽)
인생에 닥치는 불행에 일일이 슬퍼하고 있느니 차라리 삶의 부조리함에 웃음을 터뜨리는 편이 낫다. 웃음은 영혼의 여유를 드러내는 근사한 회복력의 한 형태다. (48쪽)
인종적·문화적으로 소외된 이들은 타자이기에 다른 관점, 즉 어떻게 해야 복잡한 미국적 맥락 속에 끼어들어갈 수 있을지 파악하는 능력이 있다. 주변부에 서 있기에 더 큰 그림을 이해하는 시야가 생긴 것이다. 문화와 인간 본성을 깊이 인식할 때 유머가 나오고, 이중잣대와 모순을 마주하며 겪는 소외감에서 독특한 관점이 형성된다. 두 가지 문화 속에서 자란 나는 이 말을 완벽히 이해한다. 나의 글쓰기, 세계관, 유머 감각의 상당 부분은 균열 속에서 느끼는 불편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53쪽)
똑같은 논리를 작가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많은 것을 본다. 무엇이든 새롭거나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끊임없이 세상사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어쩐 일인지 내가 아는 시인 중에는 정신질환을 겪은 사람이 많다. (거의 다인가?) 우리는 망가지기 쉬운 인간들이다. 코미디 작가라면 두 배로 망가질 수 있다. (71쪽)
나의 행동거지, 늘 어떤 소동에 얽히거나 허용된 선을 넘고 싶어 하는 욕구는 전통적인 멕시코 문화에서는 여성스럽지 못한 것이었다. 엄마의 엄마인 루이사 할머니는 나를 ‘마리마차marimacha’라고 부르곤 했는데, ‘남자 같은 년’ 또는 레즈비언을 상스럽게 부르는 말이다. 엄마는 그보다는 덜 거칠게 ‘안다리에가andariega’라고 불렀다. ‘방랑자’나 ‘떠돌이’라는 뜻으로 ‘거리의 여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자고로 여자애들은 집 밖으로 나돌면 안 되는 법이다. (94쪽)
절대 아물지 않는 상처. 내 눈에는 그 여성들이 보이지 않는 칼날 위에서 춤을 추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니 어릴 적 읽었던 어느 전설이 떠오른다. 더 이상 서 있을 수 없을 때까지, 발에서 피가 날 때까지 춤을 추었던 소녀에 관한 이야기 말이다. 어쩌면 그 소녀도 절대 아물지 않을 상처를 치유하려 애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 모두 그러고 있는지도. 어쩌면 살아 있다는 게 바로 그런 것일지도. (104쪽)
여성 작가를 막아서는 수많은 걸림돌에 관한 울프의 의견은 옳지만, 나는 우리의 글쓰기에 담긴 분노에 대한 그의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울프는 여성의 분노가 예술의 진정성을 갉아먹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다들 자기만의 방식으로 분노한다. 왜 분노하면 안 되는가? 분노가 없다면 우리는 대체 어떤 존재가 되겠는가? 나는 나의 분노를 돌본다. 이름을 붙인다. 머리를 빗겨주고 자장가를 불러준다. (221쪽)
출판사 서평
평생을 이방인으로 살아온 여성이
아물지 않는 상처를 치유하려 애쓰는 일,
고통을 받아들이고 삶을 회복하는 방식에 대하여
에리카는 시카고의 가난한 멕시코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고, 집안에서 유일하게 튀는 존재로 자랐다. 가톨릭을 믿는 전형적인 멕시코 이주노동자였던 부모님은 어린 에리카의 머리를 땋으며 얌전한 딸이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는 집안에서 처음으로 대학에 진학하고, 결혼하지 않은 채 독립하고, 자유롭고 문란하게 살고, 대서양을 건너 다른 나라로 유학을 가고, 정신질환 치료를 받고, 임신중지를 했다. 에리카의 가족과 친구를 포함한 주변의 모두가 “그를 오해하거나 싫어하고나 둘 다이거나 했”다.
집안과 세상이 요구하는 자신의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던 에리카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과 마찰하고 갈등한다.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가기 위해 애쓰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좌절을 맛본다. 보수적인 성교육과 자신의 욕망과 페미니즘적 가르침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비밀을 숨긴 유부남에게 빠져 착취당하는 연애를 하기도 하고,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자신의 ‘인종적 고향’인 스페인으로 가지만 결국 어디도 자신의 자리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텅 빈 마음으로 미국으로 돌아오기도 하며,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뉴욕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다가 통제적인 업무 환경 속에서 공황에 빠지기도 하고, 계획에 없던 임신을 한 후 우울증 치료와 임신 상태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기도 한다. 에리카는 자기를 둘러싼 억압에 저항하지만 유색인 여성인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자신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은 세상을 번번이 맞닥뜨린다.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그는 이렇게 선언한다. “회복력이란 고결한 특성이라기보다는 억압받으며 강요당하는 삶의 방식이다. 적응하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다.”
어떤 사람들의 영혼은 다른 이들의 영혼보다 망가지기 쉽다. 비주류일수록, 소수자일수록, 주변부에 선 사람일수록 감각을 곤두세우고 주변과 사물을 관찰하며 더 넓은 시야를 이해하고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세상의 모순을 발견하고 더 큰 고통을 느끼지만, 이들의 고통은 너무 예민한 것으로 치부되거나 정체가 없다고 여겨진다. 에리카는 겹겹의 소수자성을 두르고 살아가며 수많은 균열과 중첩된 고통을 느낀다. 누군가는 그렇게 엉망진창이 된 에리카를 “미쳤다”고 하지만, 사실 그는 미친 것이 아니라 고통받고 있는 것이다.
나의 웃음소리를 무례하게 여기는 이 세상에서
무엇이든 농담으로 만들 수 있다면 더는 고통스럽지 않다
에리카는 자신의 가장 중요한 무기로 유머를 꼽는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이 베풀듯 가장 괴로운 사람들이 제일 많이 웃는다고 주장한다. 또한 멕시코인들이 모이면 형성되는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예시로 들며 “정신을 놓지 않으려고 유머에 의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남미 특유의 시끄러운 웃음소리를 불편해하는 백인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는 에리카는 시종일관 농담을 한다. 자신의 질염에 대해, 외모에 대해, 피부색에 대해, 차별주의자에 대해, 정신질환에 대해, 자살 사고에 대해 농담하며 웃어넘긴다.
에리카는 어릴 적부터 “재미있고 강한 사람”이 되기를 소원했다. 그에 의하면 웃음은 “영혼의 여유를 드러내는 근사한 회복력의 형태”다. 백인 중심, 남성 중심의 세상에서 유색인 여성으로 살아가다 보면 예민하고 사나워질 수밖에 없다. 그럴 때 유머는 모든 것을 좀 더 견딜 만하게 해준다. 에리카는 자기 삶에 일어난 이상하고 부당한 일들을 비웃으며 비판하고, 자신의 단점과 취약함을 웃음으로 극복한다. 현실을 마주하고 절망하는 대신 자기만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며 주도권을 가져오는 것이다.
상처받고 부서지고 망가져 우스운 꼴이 되더라도
우리의 삶은 존엄하고 우리의 이야기는 중요하다
에리카는 임신중지 수술을 경험한 후 바닥까지 무너진다. 더 이상 농담도 할 수 없고 글을 쓸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른다. 매일 울면서 자살을 생각하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그는 세상에 손을 뻗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자신을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에리카는 결국 고통을 갈무리할 방법을 찾아내고, 삶을 회복하려고 애쓴다. 자신을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보살핌을 받는다. 에리카는 포기하지 않고 자기 자리를 찾아낸다. 진정한 사랑을 발견하고, 어머니로부터 딸에게 대물림되는 가난과 억압의 고리를 끊어내기로 한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파트너와 앞으로의 삶을 약속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딸을 만난다. 그리고 에리카는 삶의 가치와 존엄을 진정으로 믿게 된다.
이 책은 고향도 뿌리도 정처도 없는 여성이 느낀 정체 없는 고통, 디아스포라,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갈망, 자신의 아픔을 웃어넘기는 요령, 그리고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결국 자기 자신을 고향 삼고, 자신의 상처로 농담할 수 있게 된 한 여성의 미시사이기도 하다. 세상의 가장자리에 서 있는 여성들, “나를 다른 방향으로 밀어내려는 세상, 나를 사랑하지 않고 나를 위해 구축되지도 않은 세상”을 마주해야 하는 이들에게 에리카의 이야기는 오랜 친구와의 저녁 식사와도 같은 밀접한 위로를 선사할 것이다.
이 책의 표지 그림은 멕시코계 여성 화가 패트리샤 오르티즈(Patricia Ortiz)의 작품 〈초월Transcendence〉다. 에리카와 같은, 젊은 유색인 여성 예술가의 작품을 사용하고자 했다. 패트리샤는 이 작품이 자신의 할머니에 관한 그림이라고 설명했다. 에리카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먼저 온 모든 여성에게 빚을 졌”다. 이 책에는 살아남아 자신의 꿈을 이루고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환경을 물려주고자 하는 소수자의 열망이 담겨 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생존자’라면 누구든 이 책에서 동질감과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정보
ISBN | 9788972971184 | ||
---|---|---|---|
발행(출시)일자 | 2024년 01월 31일 | ||
쪽수 | 328쪽 | ||
크기 |
138 * 210
* 24
mm
/ 522 g
|
||
총권수 | 1권 | ||
원서명/저자명 | Crying in the Bathroom: A Memoir/Erika L. Sánchez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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