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서울대 대학원 ‘논문 교체’ 들여다보니… 올해도 제출 후 ‘내용 수정’?
오푸름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20.10.23 16:01

-내용·참고문헌 수정 0건이라지만… 일부 사유서에 수정 흔적
-2019년 하반기 이전까지 연구결과·결론 수정도 비일비재
-“미완성 논문 제출하고 나서 수정하는 식의 관행 없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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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일보 DB
    최근 서울대 대학원의 석·박사 학위 논문 교체 건수가 한해 최대 250여건에 달할 정도로 급증한 가운데, 서울대 측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논문 교체 사유 중 ‘내용 수정’과 ‘참고문헌 수정’ 항목을 삭제했다. 논문의 내용이나 검증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선에서만 교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같은 수정 작업이 은밀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본지 기사([단독]서울대 대학원의 수상한 ‘논문 교체’… 한해 최대 250건 달해)에서 공개한 ‘2015-2020 서울대 대학원의 학위논문 교체 사유 현황’에 따르면 ‘내용 수정’과 ‘참고문헌 수정’을 이유로 논문을 교체하는 사례는 최근 5년간 매년 100건 이상(2019년 제외)에 달했지만, 올해는 ‘0건’으로 급감했다. 대신 ‘오탈자 수정’과 ‘인쇄 및 편집오류’가 크게 늘었다. 이 때문에 일부 논문의 교체 사유를 허위로 기재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23일 본지가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김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2019-2020 서울대 대학원 보존용 학위논문 교체(정정) 신청서’를 전수조사한 결과 이 같은 정황이 포착됐다. 학위논문 교체 신청서에는 ‘인쇄 및 편집 오류 수정’이나 ‘오탈자 수정’ 항목에 표시하고, 실제로는 논문에 있는 표·사진·그림 또는 각주·참고문헌 등을 추가·수정하는 식이다. 기존 논문에 적힌 것과 다른 의미의 단어나 수치, 문장을 넣거나 수정하는 경우도 눈에 띈다.

    예를 들어, 올해 상반기 A과 박사 학위를 받은 B씨는 학위논문 정정 신청서에 ▲본문 및 각주의 오류 수정 ▲참고문헌 오류 수정 ▲제목 크기 등 편집 수정 ▲부록의 오류 수정 ▲내용의 명료화를 위한 수정 및 보완 등을 사유로 적었다.

    같은 시기 C과 석사 학위를 받은 D씨는 학위논문 정정 신청서에 “1장 1절과 2절의 내용상 2~3개 정도 추가해야 할 표가 있으며, 1장의 내용 역시 맥락에 맞게 다듬으려 한다”며 “머리말 역시 약간의 수정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라고 썼다.
  • 2020년 서울대 대학원 보존용 학위논문 교체 신청서 일부. / 김철민 의원실 제공
    ▲ 2020년 서울대 대학원 보존용 학위논문 교체 신청서 일부. / 김철민 의원실 제공
    이처럼 실제로는 일부 논문의 내용과 참고문헌에 대한 수정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상황에서 서울대 측이 내놓은 지침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서울대 측은 2019년 하반기부터 기존의 보존용 학위논문 교체 신청서 양식을 일부 변경했다. 이전까지 선택할 수 있었던 교체 사유 항목 중 ‘내용 수정’과 ‘참고문헌 수정’을 삭제하고, ‘교체사유는 논문의 내용이나 이에 대한 검증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명백한 오류의 수정에 한함’을 명시하는 식이다. 더욱이 올해 하반기부터는 교체 내용을 상세하게 입력하도록 했다. 그럼에도 이 같은 논문 수정 작업을 막기엔 역부족인 것으로 보인다.

    이보다 앞서 2019년 하반기 이전의 교체 신청서를 살펴보면 논문 내용과 참고문헌 수정이 더욱 수월했음을 알 수 있다. 연구결과나 결론 등을 수정하는 일도 비일비재한 편이다.

    지난해 상반기 E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F씨는 ‘내용 수정’을 이유로 논문 교체를 신청하며 상세 기술란에 “제출 당시 시간 제약으로 인해 전반적인 내용 수정 및 통계분석 검토를 충분히 하지 못해 수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내용 수정’ ‘인쇄 및 편집 오류’ ‘오탈자 수정’ ‘참고문헌 수정’ 등을 모두 선택한 G씨는 H학과 박사 학위 논문 교체 신청서에 “1부 2장의 내용 및 순서를 변경해 논문 전체의 취지에 더 부합하도록 수정이 필요하고, 서론 및 결론의 일부 수정이 필요하다”며 “참고문헌 누락 등의 문제점들도 개선하고자 한다”고 했다.
  • 2019년 서울대 대학원 보존용 학위논문 교체 신청서 일부. /김철민 의원실 제공
    ▲ 2019년 서울대 대학원 보존용 학위논문 교체 신청서 일부. /김철민 의원실 제공
    서울대 내부에서는 연구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미완성된 학위논문 제출 후 수정하는 관행을 깨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서울대 관계자는 “학위논문을 제출해 졸업요건이 채워지면 지도교수 묵인 하에 수정된 논문을 제출하는 식의 일종의 편법이 아니겠느냐”며 “관련 지침을 보다 명확하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lulu@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