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5-7호)

⟪한국고대근동학 노트⟫ 제5호를 펴내며
_편집위원장 윤성덕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인 구석이 있다. 좋게 말하면 자신을 존중하며 긍정적으로 삶을 대하는 태도를 기를 수 있는 출발점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자기 주변에 같이 사는 사람들과 자연계를 자신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재단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이유가 된다. 고대사를 공부할 때 옛날 옛적에 살던 사람들이 자기 자신과 주변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보고 혀를 찰 때가 있는데, 내가 그 사람의 자리에 앉았다면 다르게 결정했을 것이라고 쉽게 대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꼭 이기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말하기는 싫지만 올해부터 ⟪한국고대근동학 노트⟫를 1년에 3회(3, 7, 11월) 발행하기로 했다. 필자들이 작년에 네 편의 글을 발표하면서 여러모로 크게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다. 노트를 읽어주시는 독자 분들께 필자들의 이기적인 결정을 용서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이번 호에서 김아리 박사는 ‘고대근동의 신상’에 관해 설명한다. 고고학 발굴을 통해 신상을 발견한 예가 없어서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지만 기록 자료와 간접적인 고고학 유물들을 분석해 신상을 제작하고 그 안에 신의 임재를 받는 방법을 자세히 논의한다. 신상과 관련된 주요 제의와 신전 시설은 물론 관련된 역사 사건도 예로 들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신이 인간을 필요로 하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인간은 신이 꼭 필요하기 때문에 신상은 결국 인간의 이해관계에 따라 제작된 물건이라고 볼 수 있다. 현대인들도 아직 신상을 만들거나 유형 또는 무형의 신상 대체물을 만들어 섬기고 있으니 전통의 힘은 오늘날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유성환 박사는 ‘고왕국 시대 귀족의 인물상’을 소개하는데, 마스타바라는 매장지 안 추모실에 설치해 망자의 혼(카ka)이 깃들도록 하는 조각상이었다. 망자의 혼은 이 인물상에 임재해 살아 있는 자들이 시행하는 의례에 동참하고 봉헌물을 흠향한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족이나 하인들의 조각상도 만들고, 망자의 인물상도 지위에 따라 여럿을 만드는 등 다양하게 변하는 모습도 논의했다.
망자가 자신을 위해 인물상을 만들어주는 후손들을 반갑게 여길지는 직접 확인할 길이 없지만, 제사와 음식을 바치고 살아 있는 자의 소원을 어떻게든 들어주기 바라는 태도는 모든 종교의 출발점일지도 모른다. 결국 신상과 인물상은 매우 비슷한 의도로 제작하는 셈이다.
 
윤성덕 박사는 ⟨샤마쉬 찬양시⟩ 마지막 부분을 번역하고 주해한다. 하늘에 높이 떠서 모든 것을 아는 태양신이 운명이 흘러갈 일을 인간에게 징조로 알려주며, 인간은 정해진 축일에 음식과 술을 준비해 정성스럽게 신을 섬긴다. 선인과 악인은 물론 천사에 해당하는 하위 신도 샤마쉬를 섬기니, 그는 시간과 계절을 주관하며 세계를 운영하는 최고의 신이라고 노래한다.
이 아름다운 찬양시를 뒤집어 읽으면 기도자가 무엇을 바라는지 아주 쉽게 드러난다. 태양신 샤마쉬를 이렇게 놀라운 능력으로 전 세계를 운영하는 최고의 신으로 떠받드는 이유는 그가 징조를 통해 기도자의 운명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음식과 술을 바치며 그 신을 즐겁게 한다면 정해진 운명조차 고쳐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도자에게 이런 사실을 알려주며 노래를 부르는 자는 직업 종교인이며 전문 분야가 있는 지식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주원준 박사는 ⟨아트라하시스 이야기⟩를 이어간다. 사람이 다음 세대 사람을 낳는 때가 지나자 인간이 신들을 화나게 만들었고 엔릴 신이 인간에게 오한을 보냈다. 그 뒤 주인공 아트라하시스가 등장해 에아 신에게 기도를 했고 에아는 오한을 물리칠 방법을 알려준다. 그리고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온다.
대개 불만이 있는 자들은 갈등을 일으키지만 살 만한 사람들은 기존 질서를 유지하기 원한다. 그런데 ⟨아트라하시스 이야기⟩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이는 신들이고, 인간들이 현재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기 바란다. 그렇다면 신은 누구이고 인간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김구원 박사는 제임스 호프마이어의 저서 ⟪아켄아텐과 유일신교의 기원⟫ 서평을 실었다. 저자는 직접 텔 엘-보르그를 발굴한 결과를 토대로 아텐 종교가 고왕국 시대의 제5왕조 전통을 회복하려는 시도였고, 아켄아텐의 종교개혁은 그의 종교적 체험을 기초로 발발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과거에 일어난 일은 기록 자료나 고고학 유물로 완벽하게 재구성하기 어렵고, 그것이 과거 사람들의 사상이나 종교적 신념이라면 그 어려움이 배가될 뿐이다. 유일신교의 기원 문제는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는다.
그러나 유일신교 신앙을 주창한 사람이 신심과 깨달음이 깊은 수도자나 현인이 아니라 정치 권력의 핵심에 자리한 왕이라면 판단이 좀 쉬워지지 않을까? 왕이란 무엇이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큰 힘을 유지하기 위해 세밀하게 계획하고 중단 없이 추진하며 절대 후회하지 말아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가 고백하는 종교적 체험도 거대한 행동 강령의 일부로 평가해야 할 것만 같다.

차례

▪ ⟪한국고대근동학 노트⟫ 제5호를 펴내며 — 편집위원장 윤성덕 · 3

[ 특별 연재 ]
▪ 고대근동의 신상 — 김아리 · 8
▪ 고대 이집트의 예술 ⑤: 고왕국 시대 귀족의 인물상 — 유성환 · 19
▪ 바빌리 사람들의 지혜 ⑤: 샤마쉬 찬양시 ③ — 윤성덕 · 36
▪ 아트라하시스 이야기 ⑤ — 주원준 · 47

[ 고대근동학 리뷰 ]
▪ 아켄아텐의 일신교 개혁의 종교현상학적 배경 — 김구원  · 63
   제임스 호프마이어, ⟪아켄아텐과 유일신교의 기원⟫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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