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호 작가
대규모 개발 뒤에 묻힌 역사, 화폭 위에 ‘기념비’ 세워

사라지는 아파트들을 위해 기념비를 세워주는 사람이 있다. 정재호 화가다. 그는 정직하게, 꾸밈을 배제하고 사실 묘사에 집중한다. 종이나 한지에 먹과 아크릴릭 물감을 사용해 벽면의 오래된 얼룩과 찌든 때까지도 세밀하게 묘사해낸다.

정 작가가 바라본 1960~1970년대 서울의 아파트에는 한국의 역사가 담겨 있다. 국가 주도의 대규모 개발로 고도성장을 이뤄낸 서울의 낡아버린 모습이 정 작가의 눈에 들어왔다. 한때 경제성장의 상징이었고 누군가에겐 희망이었고 한 가족의 모든 기록이 담겼던 집, 아파트를 붓으로 기록하는 작업에 나섰다. 

정 작가는 대학원 시절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야경이 멋있다고 느껴 도시 풍경을 자주 그렸다. 그때 자주 다니던 자하문터널 위에 오래된 아파트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파트 풍경이 낯선 모습으로 다가왔다. 정 작가는 “산길을 걸어 가봤더니 청운동 시민아파트가 철거를 앞두고 텅 비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면서 “그걸 보는 순간 30년간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담았던 이 아파트를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한다.

1971년생인 정 작가는 근대화의 상징인 아파트들과 함께 컸다. 그에겐 아파트가 친구고, 그는 세상에서 사라져가는 그 친구들을 위해 붓을 든 셈이다. 정 작가는 “1960년대 말, 1970년대 초에 지어진 아파트에 남아있는 삶의 체취를 공유하고 싶어 아파트들을 찾아다녔다”고 말한다. 청운시민, 회현시범, 삼일, 정릉스카이, 중산시범, 대광맨션아파트 같은 곳들이었다.

작가는 기억나는 아파트들을 먼저 찾았다. 지도를 보고 동사무소에 문의하기도 했다. 이미 철거된 아파트 자리엔 공원이 들어섰다. 여러 아파트가 재건축을 앞두고 사라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청운시민아파트도 그런 운명이었다. 그는 청운아파트 이야기에 지금도 허전해한다.

청운동 기념비(한지에 목탄, 먹, 채색) 출처 : 정재호 개인블로그
청운동 기념비(한지에 목탄, 먹, 채색) 출처 : 정재호 개인블로그
청운동 기념비(한지에 목탄, 먹, 채색) 출처 : 정재호 개인블로그
청운동 기념비(한지에 목탄, 먹, 채색) 출처 : 정재호 개인블로그
청운동 기념비(한지에 목탄, 먹, 채색) 출처 : 정재호 개인블로그
청운동 기념비(한지에 목탄, 먹, 채색) 출처 : 정재호 개인블로그

 

“2004년 1년 내내 청운아파트를 드나들었지요. 작업이 끝난 후에도 자하문터널을 지날 때면 아파트가 잘 있는지 조마조마한 마음이었습니다. 2005년 7월 13일 인사동을 들러 작업실로 가기 위해 터널을 지나는데 아파트 자리에 아무것도 없이 주황색 포클레인 몇 대가 움직이고 있는 걸 보게 됐어요. 중3 때부터 제 의식 속에 자리 잡았던 청운아파트가 사라진 것입니다. 그 아파트를 이제 영원히 다시 볼 수 없게 됐어요. 언젠가 헐릴 아파트였지만 막상 사라지고 나니 가슴 한구석이 뻥 뚫린 듯 멍해졌어요.”

청운시민아파트(한지에 목탄)  출처 : 정재호 개인 블로그
청운시민아파트(한지에 목탄) 출처 : 정재호 개인 블로그

 

그는 친구 같은 청운아파트가 사라진 자리를 눈으로 확인했을까. 터널을 지나면서 차를 돌려 아파트 터로 가볼까 고민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냥 냅다 차를 달렸다.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아파트가 헐린 자리에서 폐허를 본다는 것은 뻔하디뻔한 제스처 중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현장을 찾아가는 대신 그는 그간 찍어뒀던 아파트 사진 파일들을 들춰 보면서 ‘도대체 이 사진 속에 남겨진 것들은 무엇이었나’를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정 작가는 “청운아파트에 얽힌 건설의 비화들, 부당하게 쫓겨났던 주민들의 이야기들은 이미 사라진 아파트 앞에선 그냥 진부한 단어들일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면서 “그저 나와 관계했던 어떤 존재가 사라졌을 뿐이고 있음과 없음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있었던 어떤 사건의 종결일 뿐이라고 생각하려고 했다”고 회상한다. 

삼일아파트(한지에 목탄, 먹, 채색) 출처 : 정재호 개인블로그
삼일아파트(한지에 목탄, 먹, 채색) 출처 : 정재호 개인블로그

헐리기 직전에 그의 시선을 끈 아파트 중에는 삼일시민아파트도 있다. 1969년 3·1운동 50주년에 준공돼 ‘삼일’ 이름을 얻었다. 대규모 주택공급을 위한 ‘시민아파트’ 사업의 하나로 추진된 24개 동, 총 1243세대의 대단지였다. 최초의 주상복합 시민아파트였고 당시로서는 최고층인 7층이었다. 

삼일아파트 작업 모습
삼일아파트 작업 모습

 

1970년 4월 8일 서울 마포구 와우시민아파트 붕괴 사고 이후 서울시 조사에서 대부분의 시민아파트 단지가 안전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삼일아파트도 철거대상이 됐는데 우여곡절 끝에 창신동, 숭인동의 삼일아파트 12개 동은 1~2층 상가는 남기고 아파트 부분은 2005년 최종 철거됐다. 이곳은 보상을 둘러싼 갈등 등으로 재개발이 이뤄지지 않았다. 지금은 주거 공간이 없어 ‘아파트 없는 아파트’로 남아있다. 황학동에 있던 삼일아파트 12개동은 황학동 롯데캐슬베네치아로 재개발됐다.

중산시범아파트(한지에 목탄, 먹, 채색) 출처 : 정재호 개인 블로그
중산시범아파트(한지에 목탄, 먹, 채색) 출처 : 정재호 개인 블로그
중산시범아파트(한지에 목탄, 먹, 채색) 출처 : 정재호 개인 블로그
중산시범아파트(한지에 목탄, 먹, 채색) 출처 : 정재호 개인 블로그

 

‘이촌중산시범아파트’ 작품에는 같은 규격의 네모 안에 다른 모양의 창과 발코니가 달려 있고 집주인에 따라 화분이나 고무대야가 놓여 있는 장면이 담겼다. 아파트의 아래층은 가게, 이발소, 유리 가게, 세탁소 등이 들어서 있다. 정 작가는 “동일한 형식 속에 다른 내용이 담기는 것이 아파트라는 주거 양식의 재미있는 점”이라며 “이런 재미는 오래된 아파트일수록 훨씬 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요즘 주상복합아파트의 폐쇄적인 분위기와는 다른 인간적인 느낌을 중산시범에서 찾아냈다고 한다.

정 작가는 아파트 철거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간 적도 있다. 한남아파트가 그 경우다. 차도 쪽의 한 개 동 외에 안쪽 동은 모두 철거공터가 돼 있었다. 정 작가는 “인터넷에서 이미지를 얻긴 했지만 내 눈으로 이 아파트를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고 말했다.

한남동 유적지(한지에 목탄, 먹) 출처 : 정재호 개인 블로그
한남동 유적지(한지에 목탄, 먹) 출처 : 정재호 개인 블로그

 

그가 아파트 철거 현장에서 발견한 것은 땅이다. 건물이 사라지고 다시 세워지는 공백 기간에 도시의 땅은 잠시 시멘트를 걷어내고 숨을 쉴 기회를 갖는다는 것이 그의 해석. 비록 30여 년만 존속했지만, 아파트도 나름의 유적이며 공터는 미륵사지(址)처럼 ‘OO아파트지’로 불릴 만하다는 것이다.

대광맨션아파트(한지에 목탄, 먹, 채색) 출처 : 정재호 개인 블로그
대광맨션아파트(한지에 목탄, 먹, 채색) 출처 : 정재호 개인 블로그

 

그는 ‘눈에 밟히는 아파트’는 그림으로 그려내고 만다. 그는 “독립문 사거리 근처의 옛 대광맨션아파트는 1973년에 지어졌으니 나보다 2살 어리다”면서 “같은 구조의 2개 동을 다른 색으로 알록달록하게 칠해놓은 게 여간 예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국 어디에나 똑같은 모양의 요즘 아파트만 보다 이 아파트를 보니 아파트도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점을 알고 놀랐다고 한다.

정 작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아파트에서 혼을 찾기도 한다. “만일 아파트에도 사람의 혼과 비슷한 것이 있다면, 그 낡고 고단한 육신이 해체됐을 때 한없이 가벼워져서 원래 있던 곳 어디론가 되돌아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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