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수도 명장] '메모는 나의 힘' 현대건설기계 전성국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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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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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에 개선 제안 819건…굴착기 엔진별 문제 해결법 책으로 엮어
2021년 울산시 명장에 올라…"대학 강단에도 서고 싶어"


편집자 주 = 울산은 명실상부 대한민국 '산업 수도'입니다. 자동차·조선·석유화학 업종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기술 명장과 장인들이 경제 발전을 이끌어 왔습니다. 이제 4차 산업 시대라고 합니다. 현장이 자동화하고 로봇으로 대체된다고 하지만,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연합뉴스는 그동안 기술 개발과 경제 발전을 위해 묵묵히 산업현장을 지켜온 울산 지역 명장과 장인들을 재조명하는 기사를 매월 첫째 월요일에 송고합니다.


전성국 현대건설기계 기원
[촬영 김근주]


(울산=연합뉴스) 김근주 기자 = "의사가 아픈 사람을 치료할 때 보람을 느끼듯, 기술자는 멈춰 있던 기계를 고쳐 다시 시동을 걸 때 희열을 느낍니다."

전성국(51) 현대건설기계 기원은 굴착기 정비 분야 전문가다.

근무하면서 맞닥뜨리는 문제와 해결 방법을 모두 기록하는 습관이 있는데, 덕분에 굴착기 7개 엔진별 이상 증상과 조치 방법 등을 책으로 엮었다.

끊임없는 제안으로 현장 개선을 이뤄낸 점을 인정받아 지난해 울산시 명장에 이름을 올렸고, 올해 대한민국 우수숙련기술자, 한국 신지식인에 연이어 선정됐다.

전 기원이 기술인의 길을 걷게 된 것은 1990년 고등학교 졸업 직후이다.

경기도 연천의 한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녔던 그는 원하는 대학에 붙지 못하자 무작정 재수할 마음을 먹었는데, 문득 '내가 진짜 잘하는 것이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중학교 시절 교내 고무 동력기 날리기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던 일이 떠올랐다.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있다는 소리는 자주 들었다.

부모님도 자동차 등 기계를 좋아하던 아들에게 대입 대신 기술을 배워볼 것을 권했다.

전 기원은 곧바로 상경해 자동차 정비학원에 등록했고, 1년 만에 자동차정비기능사 2급 자격증을 땄다.

자격증을 들고 병무청에 육군 정비병으로 자원해 입대했고, 전역하고 나서는 서울의 한 자동변속기 제조 회사에 취직했다.

일하면서 자동차정비기능사 1급을 취득한 그는 우연히 현대자동차써비스 공채 사원 모집 공고를 신문에서 보게 됐다.

원서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서 부랴부랴 원서를 만들어 제출했다.

"3명을 뽑는데, 면접 보러 온 사람이 15명이더라고요. 그중에서 자동차정비기능사 1급을 가진 응시자는 저밖에 없었죠. 합격했습니다."

인천 현대자동차써비스 중장비 사후서비스(AS) 요원으로 일하던 중 1997년 외환위기가 찾아왔다.

전성국 현대건설기계 기원
[촬영 김근주]


구조조정 등으로 선배들이 회사를 나갔고, 당시 채 서른 살도 되지 않았던 전 기원은 울산으로 발령 나면서 당시 현대중공업 중전기사업부를 거쳐 건설기계사업부(현 현대건설기계)에서 근무하게 됐다.

건설 경기가 다시 부흥하고 업무도 안정되면서 전 기원은 대학에 가지 못한 아쉬움을 풀고자 2002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정보통계학과에 입학했다.

학업을 병행하면서 자동차 정비 기능장을 따기 위해 2006년 매주 도서관을 찾아 공부했고 기능장 자격을 취득했다.

당시 사내 1호 자동차 정비 기능장이었다.

전 기원은 내친김에 건설기계 정비 기능장 시험에 도전했고, 6개월에 만에 또 합격했다. 역시 사내 1호였다.

자격증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얻게 된 것은 기술만이 아니라, 메모하는 습관이라고 한다.

현장에서도 각종 문제점이 보일 때마다 기록해서 해결 방법을 고민하고 회사에 계속 제안했다.

그가 2010년 한 해 회사에 제안한 개선점만 819건이다.

휴일을 제외하면 하루에 3건 정도 제안한 셈이다.

그는 "성능검사 결과를 종이에다가 손으로 적는 방식을 전산화하자는 아이디어를 낸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종이 사용량을 줄이고 오기입도 예방해 업무 개선 효과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메모를 모아 아예 책으로 엮기도 했다.

굴착기 엔진 품질검사 업무를 하면서 '커민스', '현대', '미쓰비시', '스카니아' 등 총 7개 브랜드 엔진을 확인했는데, 이상 현상이 있을 때마다 기록한 것이 수백 장이 된 것이다.

전 기원은 시동 불량, 매연 발생, 엔진 소음 등 현상과 원인, 해결 방안을 엔진 브랜드별로 정리해 배포했고, 현장에선 여전히 그가 낸 책을 참고한다.

그가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고장이나 꼼짝하지 않던 엔진이 그의 손을 거쳐 다시 돌아갈 때다.

한 번은 수출용 굴착기가 출하를 위해 트레일러에 실리는 도중에 시동이 멈춰버렸다.

현장 직원들이 2시간을 끙끙댔지만, 해결할 수가 없어 전 기원에게 연락했다고 한다.

그는 연료라인을 따라 이상 여부를 확인해 5분 만에 다시 시동을 걸었다.

연료 펌프 호스 사이로 유입된 공기를 빼내니 엔진이 다시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전성국 현대건설기계 기원
[촬영 김근주]


전 기원은 이런 노하우를 대학 강단에 서서 후배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꿈이다.

그는 "후배들이 방황하지 않고, 기술인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돕는 안내자가 되고 싶다"고 5일 말했다.

전 기원은 2013년부터 지역 마이스터고등학교 등에서 학생들을 위한 멘토링 활동도 해오고 있다.

주말마다 부산을 오가며 공부해 최근에는 한국기술교육대학교 직업능력개발훈련 교사 2급 자격을 취득했다.

cant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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