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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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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쪽방에는 닿지 않는 국가의 온기

영등포 쪽방에는 닿지 않는 국가의 온기, 저소득층에게
냉난방 비용 지원하는 에너지바우처 제도는 잘 작동하지 않아
등록 2022-12-13 08:05 수정 2022-12-14 04:24
서울 영등포 쪽방촌에 사는 정아무개씨가 난방되지 않는 방에서 패딩 점퍼를 입은 채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서울 영등포 쪽방촌에 사는 정아무개씨가 난방되지 않는 방에서 패딩 점퍼를 입은 채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사람 한 명이 서면 꽉 차는 좁은 복도. 좌우로 나무로 된 문이 줄지어 있다. 노크하고 문을 여니 두꺼운 패딩 점퍼를 입은 정아무개(61)씨가 인사했다. 2022년 12월1일, 서울 아침 기온이 영하 9도까지 내려가면서 한파주의보가 내렸다. 영하의 추운 날씨가 며칠 이어졌다. 12월6일 찾은 서울 영등포 쪽방촌의 정씨가 사는 1평(3.3㎡)짜리 방은 난방이 들어오지 않았다.

발을 딛자마자 방바닥에서 한기가 올라왔다. 양말을 신었지만 금세 발이 시렸다. 정씨는 “여긴 난방 자체가 안 되니까 바닥은 그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기장판이 깔린 방구석으로 가야 온기가 느껴졌다. 하얗게 김이 서린 창문은 단열되지 않는 알루미늄 새시였다. 바람이 새어 들어왔다.

각종 요금 오르는데 관련 예산 줄였다가…

정씨는 고장난 전기장판을 겹겹이 쌓아놓는다. 그 위에 새로 산 전기장판을 깔고 새우잠을 잔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정씨가 생계급여와 주거급여를 합해 받는 돈은 대략 월 83만원이다. 전기요금 등 공과금이 포함된 월세로 25만원을 내고, 나머지는 식비·의료비에 쓴다. 정씨에겐 겨울마다 새로 사는 전기장판이 큰 부담이다. 방이 좁아 전기장판을 접어서 쓰다보니 고장이 난다. “누가 주는 것도 아니고…. 여기서 3년째 살며 2만7천원짜리 전기장판 다섯 개를 갈았어요.”

세계적 에너지 위기는 정씨 같은 에너지 빈곤층의 삶을 위협한다. 에너지 빈곤층의 냉난방 비용을 지원하는 에너지바우처 제도가 있지만 지원대상이 한정돼 있다. 바우처(이용권)의 대상은 생계·의료급여 수급 가구 가운데 노인, 장애인, 영유아, 임산부, 중증·희귀·중증 난치질환자, 한부모, 소년소녀가장이 포함된 가구다. 지원액은 가구원 수에 따라 다른데 1인가구의 경우 연간 14만8100원(2022년 기준 여름 2만9600원, 겨울 11만8500원)이다.

특히 에너지 위기로 각종 요금이 오르는 와중에 정부가 오히려 에너지바우처 관련 예산을 줄여 논란이 됐다. 정부가 제출한 관련 예산은 2023년 1824억원으로, 한 해 전보다 481억원이 줄었다. 이대로면 대상 가구도 117만6천 가구에서 85만7천 가구로 줄어든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22년 추경을 통해 일시적으로 늘어난 대상 가구수를 예년 수준으로 돌린 것이고, 에너지 요금이 오르고 있으니 당장은 대상 확대보단 지원단가 인상(유지)을 우선하자는 취지’다. 논란 끝에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에너지바우처 사업에 2890억원을 편성해 130만여 가구에 지급하기로 했다. 정부 예산안보다 1066억원가량 늘어난 규모다.

예산이 늘었어도 에너지바우처는 한계가 많은 지원책이다. 에너지바우처를 발급해도 절차가 까다로워 사용률이 떨어진다. 도시가스나 전기는 신청만 하면 고지서에서 지원받은 금액만큼 자동으로 차감된다. 그러나 등유, 연탄, 엘피지(LPG)는 카드사에서 발급받은 국민행복카드로 결제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낸 ‘2023년도 예산안 주요 사업 평가’를 보면, 바우처 지원 대상과 단가는 꾸준히 늘지만 사용률이 높지 않았다. 동절기 바우처의 대상 가구 대비 발급률은 2015년 90.5%에서 2021년 93%로 높아졌는데 발급액 대비 사용률은 같은 기간 90%에서 81.9%로 낮아졌다. 예산정책처는 “에너지바우처 사업의 경우 지원 대상이 계속 확대되고 있으나 대상 인원 대비 수급률과 사용률이 높지 못한 측면이 있다. 사업 효과를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소득 10% 이상을 난방에 쓰는 가구’라는 정의 문제

대상자 가운데 제도의 존재조차 모르는 경우가 적지 않고, 독립 가구가 아니면 바우처를 받기 쉽지 않은 문제도 있다. 에너지바우처는 수급자 본인이 동 주민센터에 신청해야 받을 수 있다. 고지서 등으로 냉난방 비용을 증명해야 해, 독립 가구가 아니면 받기 어렵다. 쪽방, 고시원 등 비주택은 통상 난방비가 월세에 포함돼 개별 고지서가 없기 때문이다.

또 다른 쪽방촌 주민 김은택(60)씨는 “에너지바우처는 못 받았고, (영등포구청이 지급한) 월동비 5만원은 받았다”고 했다. 김형옥 서울시립 영등포쪽방상담소장은 “정작 필요한 이들에게 에너지 복지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 공용난방을 하는 쪽방촌이나 고시원 같은 비주택은 전기계량기도 같이 쓰다보니 난방에 즉각적으로 쓸 수 있는 현물이 더 낫다”고 말했다.

근본적으로 문제를 개선하려면 에너지 빈곤층에 대한 정의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소득 10% 이상을 난방에 쓰는 가구를 ‘에너지 빈곤 가구’로 정의해 정책을 추진한다. 주로 소득을 기준으로 에너지 비용을 메워주는 접근을 하다보니 한계가 있다.

신동면 경희대 교수(행정학)와 이주하 동국대 교수(행정학)가 쓴 논문 ‘기후변화에 대응한 에너지 빈곤 정책에 관한 비교연구: 영국, 프랑스, 스웨덴을 중심으로’를 보면 복지 선진국들은 주거라는 변수에 집중한다. 프랑스는 관련 법령에서 에너지 빈곤을 ‘주거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에너지를 경제적 어려움이나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충분히 공급받지 못하는 사람’으로 정의해 소득 외 주거환경을 기준 삼았다. 스웨덴과 핀란드도 에너지 빈곤 문제를 다룰 때 ‘사회주택 등의 주택정책을 통해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는’ 접근을 한다. 스웨덴과 핀란드는 에너지 빈곤의 지표라 할 ‘새는 지붕’ ‘습기 찬 벽’이 있는 주택에 거주하는 가구 비율이 유럽연합 28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다.

주거 문제로 접근하는 복지 선진국

한국도 국토교통부를 중심으로 공공임대주택 그린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하지만 영구임대주택이 주요 대상이다. 홍정훈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은 “민간임대주택까지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하면 좋겠지만 쉽지 않다. 한국은 주거환경을 방치해 정비사업으로 돈을 버는 방법이 소유주 이득이란 인식이 압도적이다보니 열효율이 떨어지는 주택에 사는 임차가구의 에너지 빈곤 문제가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정규 기자 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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