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이사제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경영자의 무리한 기업 운영을 견제하고 이사회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한경이 기획 연재하고 있는 ‘사외이사, 그들만의 리그’는 도입 취지와 따로 가는 한국형 사외이사제의 현실을 보여준다.

도입 25년 차를 맞았지만, 사외이사의 가장 큰 덕목인 자율성과 전문성이 결여돼 입법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여전하다. 안건 찬성률이 99%에 달하는 거수기 논란은 차라리 부차적이다. 고도의 기술 발전 시대에 전문성이 없는 사외이사가 대규모 투자와 경영진 인선 등 기업 운명을 좌우하는 주요 의사결정을 단행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수십조원의 투자를 단행하는 상황에서 사외이사는 어떤 전문성과 식견으로 이 문제에 대한 찬반을 판단하는가. 더욱이 국내 사외이사는 대학교수와 법조인, 전직 관료가 대부분이다. 국내 금융사를 제외한 304개 유가증권시장 상장사가 지난해 신규 선임한 사외이사 중 교수 비중은 43%에 달한다. 사외이사 중 절반 이상을 기업인 출신이 차지하고, 교수 비중은 4%(2021년 기준)에 불과한 미국과 대조된다.

사외이사는 경영진을 견제한다는 명분 아래 그들만의 권력을 구축하고 있다. 기업 주요 결정을 좌지우지하며 ‘상왕’ 노릇을 하거나 일부 주인 없는 회사에서 주인 행세를 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사내이사에 비해 가벼운 책임을 지면서 1년에 단 몇 차례 이사회에 참석하는 대가로 억대 연봉을 받아 교수와 변호사 사이에선 ‘최고의 부업’으로 꼽힌다. 이쯤 되면 사외이사제가 선진 기업구조의 탈을 쓴 ‘위선적 지배구조’로 전락했다는 얘기가 과언은 아니다.

사외이사제가 제대로 뿌리 내릴 수 있도록 공론화해 역할을 재정립할 시점이다. 처방으로는 현행 한 회사 6년, 계열사 포함 9년으로 돼 있는 임기를 3년으로 제한하거나 사외이사 후보를 단수 추천에서 복수 추천으로 바꾸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하지만 기업의 사적 자치와 한정된 국내 사외이사 인력풀 등을 고려할 때 또 다른 규제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사외이사의 역할과 활동을 투명하게 공개해 주주와 시장에 의해 평가받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사외이사의 자격과 책임, 보수 등과 함께 이사회 실효성 평가에 관한 항목을 공시 대상으로 정해놓은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기업지배구조 가이드라인 등을 참고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