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21“나는, 너희가 벌이는 절기 행사들이 싫다. 역겹다. 너희가 성회로 모여도 도무지 기쁘지 않다. 22너희가 나에게 번제물이나 곡식제물을 바친다 해도, 내가 그 제물을 받지 않겠다. 너희가 화목제로 바치는 살진 짐승도 거들떠보지 않겠다. 23시끄러운 너의 노랫소리를 나의 앞에서 집어치워라! 너의 거문고 소리도 나는 듣지 않겠다. 24너희는, 다만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여라. (암 5:21-24)

1. 어쩌다보니 제일교회에 얼굴을 비추게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서서 말씀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저보다 성경에 대한 이해가 깊고 전달력도 좋은 분들이 훨씬 많을 텐데 상대적으로 경험이 적은 저에게 이런 기회를 내주신 것은 아마도 이번 주가 종교개혁주일이기 때문일 것으로 짐작합니다. 아시겠지만 종교개혁주일은 약 500여 년 전, 그러니까 1517년 10월 31일에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당의 문에 당시 중세 가톨릭교회의 부패상을 비판하는 ‘95개조 반박문’을 써 붙여 종교개혁의 불씨를 처음 지핀 것을 기념하기 위해 여러 개신교 교회에서 지켜오고 있는 전통입니다. 그런데 저는 종교사회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종교가 사회와 맺어온 관계, 그중에서도 특히 한국교회와 보수정치가 얽히고 설켜 온 역사에 주목해온 연구자입니다. 그래서 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오늘날 우리 사회 속에서 한국교회가 보여주고 있는 암울한 모습들을 제 나름의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다루어 오곤 했지요. 그러다 보니 아마도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서서 말씀을 나누게 된 것 같습니다.

2. 그럼 먼저 ‘종교개혁’이란 게 과연 무엇인지 잠깐이라도 짚고 넘어갔으면 좋겠습니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루터의 종교개혁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얘기들이 쏟아져 나오긴 합니다만, 정작 그 당시 쟁점이 되었던 사안들이 무엇이었는지 자세히 들여다볼 기회가 별로 없는 것 같아서요. 아까 잠시 언급했지만 16세기 초에 ‘종교개혁’을 촉발했다고 여겨지는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은 따지고 보면 당시 유럽의 가톨릭교회에 널리 퍼져 있었던 ‘면죄부’의 정당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신학적 소논문이었습니다. 가톨릭 전통에서는 사실 오랫동안 보편적 ‘교회’에 소속된 것 자체로 성도들에게 ‘구원’이 보장되어 있다고 약속해 왔었는데요. 그런데 (사람 사는 일이 다 그렇지만) 각자가 범한 ‘죄’야 각 개인이 더 잘 알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살아생전 교회에 소속되어 있었다고 하더라도 죽음 이후 과연 저 지옥의 저주를 피해 ‘구원’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을까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소위 ‘연옥’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는데요. 아주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연옥’은 살아생전에 ‘교회’에서 ‘구원’을 약속받았기에 죽음 이후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질 염려는 없으나 그럼에도 ‘죄’를 많이 졌기에 아직 ‘천국’으로 들어갈 자격을 얻지 못한 영혼들이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며 머무는 일종의 ‘참회소’이자 ‘천국으로 가는 대기소’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개별 영혼이 그 ‘연옥’에서 참회하며 머물러야 할 시간이 도대체 얼마쯤이면 되는지 알 도리가 없었습니다. 죄의 경중에 따라서 그 기간이 몇 개월이 될 수도 있고 또 몇백 년이 될 수도 있던 셈이었죠.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가톨릭교회는 ‘면죄부’를 판매하기 시작합니다.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아직 ‘연옥’에 머물러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인의 영혼을 위해 아직 살아있는 그들의 가족이나 친지들이 교회에 일정한 돈을 지불하고 ‘면죄부’를 대신 사주면 그 영혼들이 ‘연옥’에서 참회해야 할 시간이 단축될 거라는 약속과 함께 말이지요.

3. 이처럼 당시 가톨릭교회에 널리 퍼진 ‘면죄부’ 매매에 의문을 품은 루터는 ‘95개조 반박문’에서 그 부당성을 하나하나 논박해 나갑니다. ‘죄’의 감면을 사고판다는 ‘면죄부’의 발상 이면에는 사실 당시까지만 해도 가톨릭 전통에서 오랫동안 당연시해오던 죄론, 구원론, 교회론, 그리고 교황의 무오류성 등등의 복잡한 신학적 논쟁들이 얽혀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그 반박문에서 ‘면죄부’ 매매를 문제시 삼으면서 후에 종교개혁의 모토가 되는 원칙들을 제시해 나갑니다. ‘오직 성경으로만’ 오직 믿음으로만,’ ‘오직 은혜로만,’ ‘오직 그리스도로만,’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으로만’ 등등이 바로 그 원칙들이지요.

4. 사실 이 각각의 원칙들을 제대로 뜯어보기 위해서는 한도 끝도 없이 복잡한 신학적 논증이 필요할 겁니다. 그런데 저는 조직신학자도 아니고 교회사가도 아닌지라 이 논증들을 짧은 시간 내에 제대로 설명할 능력이 없습니다. 다만 종교사회학의 논의에 따라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으로 촉발된 개신교 ‘종교개혁’의 성격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풀어서 얘기해 볼 수는 있을 듯합니다.

5. 당시 교회는 신과 인간의 관계를 중재하면서 신자들을 대상으로 ‘구원’ 혹은 ‘죄사함’을 마치 상품처럼 취급해 거래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교회는 일종의 ‘구원재,’ 영어로 풀어서 얘기하면 ‘salvation goods’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매매하는 일종의 판매소 같은 기능을 했다고 할 수 있고요. 이런 시각에서 보면, 가난은 (비유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말 그대로 ‘죄’가 되고 맙니다. 역으로 부유한 집안에 살다가 죽은 사람의 경우에는 그 후손들이 비싼 값을 지불하고 ‘면죄부’를 사서 천국행으로 가는 직행열차에 태워줬다고 할 수 있고요.

6. 그런데 루터는 당시 ‘교회’에서 당연시했던 ‘구원재’의 문제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바라볼 것을 제안했습니다. 일단 ‘구원’과 ‘죄사함’의 문제에 있어서 교회라는, 신과 인간 사이에 끼어있

는 매개체 혹은 중간상인의 역할을, 아예 인정하지 않거나 대폭 축소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루터는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중세 가톨릭교회가 구원재를 독점하고 있다는 기존의 통념을 거부하고 모든 신도에게 자신의 구원에 관해서 만큼은 신과 일종의 직거래 관계를 터야 한다고 선언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루터는 당시까지만 해도 성직자만 읽고 해석할 수 있는 라틴어 성경을 쉬운 독일어로 번역해 모든 평신도 개개인이 자신의 눈과 귀와 이성을 동원해 직접 읽고 듣고 해석해서 자신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길을 열었던 거고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루터의 종교개혁에서 ‘오직 성경으로만’이라는 구호와 ‘만인사제설’이 핵심 키워드로 등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7. 여기서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신과 인간 사이에 일어난 직거래에서 통용되는 화폐가 기존 세상에서 통용되는 화폐와는 그 성격이 전혀 달랐다는 겁니다. 교회의 헌금함에 짤랑 소리를 내면서 떨어지는 그런 금은화폐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만’ / ‘오직 은혜로만’ / ‘오직 그리스도만’ / ‘오직 하나님의 영광으로만’과 같이, 세상의 물질적인 기준으로 환산될 수 없는 전혀 다른 화폐를 통해 신과 직거래 하기를 권유했던 것이지요.

8. 루터가 촉발한 종교개혁을 이런 식으로 재해석하고 나면, 우리는 이 같은 종교개혁이 1517년 독일의 비텐베르크에서 일어났던 유일무이한 사건이 아니라 유대-기독교 역사 전체를 통틀어 (비록 아주 자주 일어난 일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제법 꾸준히 일어난 사건들의 한 사례임을 그리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고대 유대교에서나 현대 한국교회를 막론하고 종교지도자들은 (물론 모든 사람이 그렇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대체로 ‘성전’으로 상징되는 제도교회의 상층부를 차지한 채 호시탐탐 ‘구원재’를 독점하려는 경향을 보여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흔히 자신들이 구축해놓은 물리적 공간 내에서 엄격한 규율에 맞게 드려지는 ‘제사’ 혹은 종교 의례를 통해서만 이 ‘구원재’가 분배될 수 있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다시 말해 구원재가 교환되는 장소를 한정하고 그것이 교환되는 거래의 규칙들을 촘촘히 규정하는 방식을 통해 구원재를 독점해 왔던 것이지요. 그런데 신구약의 여러 장면은 이처럼 종교 권력을 오용 또는 남용하는 종교지도자들 — 성경에서는 이들을 보통 ‘제사장’이라고 지칭하고 있는데 — 이들에게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 대적해온 소위 ‘예언자’ 전통에 대해서 곳곳에서 증언하고 있습니다.

9. 성전을 관리하며 그곳에서 정기적으로 신에게 올리는 제사를 주관해야 하는 제사장들과 달리 이들 예언자 혹은 선지자들은 자신의 활동에 있어 장소에 그리 제약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주로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어떤 계시를 받은 후 빈 들에서 강가에서 또 때로는 성전 안에서 자신들이 신으로부터 받은 말씀을 전달합니다. 그래서 어떤 종교사회학자는 이러한 예언자들을 가리켜 ‘Wort-Träger (word-carrier)’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예언자란 신의 계시 혹은 말씀을 사람들에게 실어 나르는 메신저라는 얘기이지요. 그리고 이들 예언자는 당대의 권력자들, 즉 왕이나 제사장들에게 엄중한 경고를 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 일반 사람들을 상대로 기존에 다른 종교지도자들이 얘기해오던 것들과 사뭇 다른 가르침들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10. 사실 바로 이러한 예언자 전통에 서 있는 대표적인 이가 바로 예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복음서에도 기록되어 있지만) 누가복음 19장에서 20장으로 넘어가는 곳을 펼쳐보면, 그 유명한 예수의 성전 정화 사건과 그 뒤를 이은 논쟁 장면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해 성전에 들어가자마자 한 것은 (다른 복음서 기자들의 보고에 따르면) 그곳에서 사람들에게 제사의 편의를 위해 돈을 환전해주거나 번제에 쓸 비둘기를 파는 상인들을 내쫓는 일이었습니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하는 질타와 함께 말이지요. 그 후 예수는 날마다 성전을 출입하며 그곳을 방문한 백성들에게 대제사장들이나 백성의 지도자들이 심히 불편해 할만한 메시지들을 전달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20장 2절에 보면 예수의 이런 언행에 불만을 품은 당대의 종교지도자들이 예수에게 다가와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라고 따져 묻기도 하지요. (눅 20: 2).

11. 오늘 성경 본문에 소개된 구약시대의 선지자 아모스 같은 경우도 예수님이나 예언자 전통에 서 있는 대표적 인물 중 하나입니다. 아모스서를 조금이라도 들춰보시면 금세 확인할 수 있을 텐데요. 이 예언자는 정말 상대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온갖 저주와 독설을 퍼붓는 것으로 유명하지요. 아모스가 기존의 정치 및 종교 질서를 비판하며 워낙 험한 말을 퍼뜨리고 다니니까 아모스 7장 (10절부터) 보면 당시 북이스라엘에서 제사장 역할을 맡았던 아마샤라는 인물이 아모스와 정면으로 맞부딪치기 시작합니다. 우선 아마샤는 당시 북이스라엘의 왕으로 군림하던 여로보암에게 사람을 보내 아모스가 역모를 꾀하고 있다고 고자질하는 한편, 아모스에게는 더이상 북이스라엘의 질서를 어지럽히지 말고 저 남쪽 유다 왕국으로 도망가 예언자 생활을 하라고 윽박지르지요.

12. 그런데 7장 14~15절에 보면, 아모스는 이처럼 당시 북이스라엘의 주요 종교지도자로 활동하던 아마샤에게 사뭇 의연한 태도로 다음과 같이 응답합니다.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로서 양 떼를 따를 때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라고 맞받아칩니다. 아모스 본인은 아니라고 하고 있지만, 그의 이 같은 발언에는 예언자 전통의 정신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는 먼저 ‘선지자’나 ‘선지자의 아들’이라는, 어찌 보면 당시 세상 사람들 역시 어느 정도 종교적 권위를 인정할 만한 타이틀로 불리기를 거부합니다. 그 대신 아모스는 평소에 자신이 생업으로 삼고 있는, 다시 말해 지극히 일상적으로 먹고사는 수단을 밝힙니다. 무엇보다 자신은 양 떼를 치는 축산업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농부라면서 말이지요. 그렇게 자신은 특별히 신학 교육도 받지 않았고 종교계에서 인정받는 좋은 가문 출신도 아니지만, 본의 아니게 어느 날 갑자기 여호와의 말씀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신은 그저 자신의 귀에 들려온 여호와의 계시를 그대로 사람들에게 실어 나르는 사람에 불과하다면서 말이지요.

13.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 성서 본문에 나오는 아모스의 예언이 등장합니다. 아모스 5장 처음부터 살펴보면, 아모스는 당시 북이스라엘 사회에 만연해 있던 사회 병리적 현상을 날카롭게 꼬집습니다. 11절에서는 “너희가 힘없는 자를 밟고 그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거두었노라고 질책하는가 하면, 바로 그 다음절인 12절에서는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라고 규정합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업신여김을 당하고 감당하기 어려울 만한 비율의 세금을 수탈당하지만 돈 많은 이들은 권력자와 위정자에게 뇌물을 건네줌으로써 죄는 없으나 가난한 사람들을 상대로 법정 싸움에서 승승장구하는 당시의 세태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이지요.

14. 바로 이러한 사회적 상황을 염두에 두면서 아모스는 5장 21절부터 24절에 걸쳐 당시 북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을 향해서도 쓴소리를 날립니다. 본문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 제사장은 ‘성회’라는 거룩한 시공간을 따로 설정해 놓고 여호와와 백성들 사이에 중재자 혹은 매개자임을 자처하면서 사람들의 죄를 사해주거나 경감시켜주는 제사를 주관하는 일을 독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양치기이자 농부임을 자처하는 아모스는 당시 종교적 권력을 쥐고 있는 이들을 향해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이 소외당하고 의인이 비웃음을 사고 있는 상황 속에서 그들이 절기에 따라 세심하게 준비한 예배와 제사와 아름다운 음악과 찬양, 이 모든 것이 여호와 앞에 아무 의미 없는 행위일 뿐이라고 일갈합니다. 대신에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 것을 요구하면서 말이지요.

15. 아시다시피 5장 24절은 아모스서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많이 언급되는 구절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사용되고 있는 ‘정의’와 ‘공의’라는 단어의 의미를 이 기회를 빌려 좀 더 자세히 곱씹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찾아본 바에 따르면 여기서 ‘정의’라는 단어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Mishpat”으로 이는 특히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 잘못된 일을 바로잡는 민사법상의 정의에 가까운 뜻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공의’라는 단어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Tsedaqah”로 이는 경제적-사회적 신분과 상관없이 법 앞에서 공정하고 평등하게 판단 받을 법적 정의를 지칭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라는 이 시적 표현은 사실 예배와 제사보다는 5장 앞부분에서 언급된 사회 정의를 제대로 세워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지요.

16. 그래서 어찌 보면 아모스 5장 24절은 마태복음 5장 23-24절에서 예수님이 베푼 가르침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제사를 드림으로써 신으로부터 죄사함을 받는 것도 중요할지 모르겠으나 그보다 먼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망가진 정의를 회복하고 그들과 화목을 추구하는 것이 우선순위에서 더 앞서야 한다는 얘기가 되겠지요.

17. 자. 이제 제 말씀을 슬슬 마무리할 때가 온 것 같은데요. 지금껏 우리는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을 잠시 살펴보는 것에서 시작해서 신구약 성서의 여러 장면을 떠올려보며 유대-기독교에서 제사장 전통과 예언자 전통이 서로 어떤 긴장 관계 속에 놓여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마침 종교개혁 주일이기도 해서 어쩌면 저는 오늘 말씀을 나누는 가운데 제사장 전통보다는 예언자 전통의 중요성에 좀 더 무게를 실어주려고 했던 것 같은데요. 사실 따지고 보면 이 둘은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예언자와 선지자는 날이면 날마다 등장하는 사람들이 아니고요. 그들은 어떤 계시와 영감을 받을 때만 바람과 같이 나타나 신적 메시지를 전한 후 다시 홀연히 자기 갈 길을 떠나는 존재들입니다. 대신 제사장은 일상과 구분된 거룩한 시공간을 매일같이 지키며 아무리 지치고 힘든 상황 속에서라도 자신에게 맡겨진 성직자의 임무를 꾸준히 또 반복적으로 수행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사가 늘 그렇듯 그처럼 같은 일을 수없이 반복하게 되면 그 업무가 가진 의미가 퇴색되기 쉽고 형식주의/율법주의로 빠지기 쉬우며 또 그러다 보면 과도하게 종교 권력에 집착하는 현상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렇게 종교가 화석화될 때, 그리고 그러한 종교의 모습에 실망한 사람들의 원성과 불만이 극에 달했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예언자들이 등장해서 개혁을 부르짖게 되는 걸 테지요.

18. 그리고 종교사회학에서는 그 예언자들이 전하는 메시지가 보통 다음과 같은 공식을 따른다고 얘기합니다. 이는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님이 산상수훈을 전할 때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문구인데요. 그것은 바로 “~라고 하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일종의 수사적 어법입니다. 이 문구를 통해 예수님은 기존에 사람들이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종교적 가르침들을 하나하나 상기시켜주는 한편, 자칫 그런 규율과 율법들이 문자적으로만 해석되어 기계적으로 적용되는 흐름을 경계하면서 대신 사회 정의에 입각해서 급진적 사랑과 화해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꾸준히 종교 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이처럼 “~라고 하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와 같은 어법을 접할 때 그것이 우리 시대와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예언자의 목소리가 아닐까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특히나 요즘의 한국 사회와 교계에서처럼 힘없고 가난한 이들이 억압당하고 종교 권력을 독점한 이들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상황 속에서는 더더욱 그런 개혁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볼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축도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오늘날 도탄에 빠져있는 한국사회와 한국교회에서 정의를 세우고 공의를 확립하기 위해 애쓰며 사는 모든 서울제일교회 성도와 사회 곳곳에서 열심히 자기 일을 감당하며 의인으로 살아가는 이들과 늘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