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의 10년 성찰과 서울퀴어문화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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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제정된 ‘서울특별시 서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이하 ‘서울광장 조례’)에서, 광장 사용 절차는 서울시장의 ‘허가제’로 시작됐다.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맞아 대한문 앞에 분향소가 차려지자 오세훈 시장은 서울광장 주변에 경찰버스로 차벽을 세워 시민들의 광장 진입을 막았다. 같은해 6·10 항쟁 기념행사를 서울광장에서 개최하려는 서울광장 사용 신청을 오 시장은 또 불허했다. 위 두 건을 비롯해 다양한 시민의 광장 사용을 통제하고 불허하는 서울시 행정에 분노한 서울시민들은, 허가제를 ‘신고제’로 바꾸는 주민발의 서울광장 조례개정운동을 시작해 10만명이 넘는 시민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와 서명을 모았다. 이 조례개정안이 2010년 9월 서울시의회에서 통과됐다. 오 시장은 조례 공포를 거부했고, 결국 서울시의회가 직접 공포했다. 이에 그는 대법원에 ‘서울광장 조례 무효 확인 소송’을 냈다. 이 정도면 그야말로 소신 있는 사람이라 하겠다. 다만 1년을 훌쩍 넘긴 2011년 12월 소송을 취하했다. 당시는 오 시장이 아닌 오세훈 개인이었다. 4개월 전인 2011년 8월 서울시장직을 중도 사퇴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서울시의회의 초등학교·중학교 전면 무상급식 조례’에 대한 반대안을 서울시장직을 걸고 주민투표에 부쳤다가 투표율 미달로 불발돼서다.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 날인 지난 5월 17일 서울시청 앞에서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가 적법한 서울광장 사용을 허가하라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이 정도 시행착오를 거치면 누구나 소신과의 거리 두기와 함께 자신과 대화하게 된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을 넘어 2021년 4월 다시 서울시장으로 복귀한 ‘인간 오세훈’ 역시 자신과 대화했으리라. 자기 입으로 “지난 10년이 자신을 돌아보는 기간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성찰 덕인지 정세 덕인지 지난 6월 1일 지방선거에서 오세훈은 무려 4선이라는 유례없는 장기집권 서울시장이 됐다. 유례없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래서 더, 조심(操心)하리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나와의 정치적 입장은 천양지차지만, 어차피 보수 정당 대표 주자가 나올 바에는 조심하고 성찰하는 사람이 나오는 게 사회를 위해 낫다. 자신과 자기 사람을 넘어 반대편 사람과도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기를 바란다. 대화와 소통은 후보로서든 시장으로서든 그가 수도 없이 공언한 바이기도 하다.

퀴어축제 서울광장 허가권 쥔 오 시장

다시 서울광장 조례로 돌아가 보자. 12년 전 오 시장이 마지막까지 쥐고 싶어했던 서울광장 사용에 관한 허가권은 문구상 이제 그에게 없다. 문제는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이하 시민위원회)에 관한 단서조항이다. 개정된 조례에 의하면 원칙적으로 신고제이되 예외적으로 ‘서울광장 조성목적인 건전한 여가선용 및 문화 활동에 부합하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시민위원회의 논의를 거칠 수 있도록’ 돼 있고, 그 시민위원회의 임명권이 시장에게 있다. ‘신고제 속 허가제’라는 통제 절차를 거쳐야 하는 그 예외적인 행사에 서울퀴어문화축제를 매년 잡아넣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서울광장 사용 허가권이 오 시장 손에 있다.

다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주요 행사 장소로 서울광장을 사용하기 시작한 2016년부터 2022년 올해까지(2020~2021년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중지) 광장 사용 신청서를 냈다. 그때마다 서울시는 일부 시민들의 반대집회가 예상된다는 이유로 그 허가 여부를 시민위원회 논의에 부친다며 시간을 끌다가, 결국 매번 뒤늦게 허가해왔다(올해는 아직 허가하지 않았다). 이에 2019년 9월 서울시 인권위원회는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의 서울광장 사용신고에 대해 서울시가 부당한 절차 지연을 더 이상 재발하지 말라는 내용의 권고문을 발표했다. 그 권고문의 주요 사항은 아래와 같다.

초여름 날씨를 보인 지난 5월 10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 바닥분수대가 시원한 물줄기를 내뿜고 있다. / 성동훈 기자


※문화행사를 비롯한 집회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돼야 한다는 국제인권규범 및 우리 헌법 제21조 제1항의 규정, 그리고 신고제를 도입한 서울광장사용조례의 취지 등에 비추어볼 때, 서울시가 퀴어문화축제의 광장 사용 신청에 대한 처리를 지체한 것은 행사 준비를 위한 업무 지체와 불편은 물론 서울광장 사용에 관한 차별적인 처우이고, 나아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조치다.

※서울시의 조치는 성소수자들이 주체가 돼 진행하는 행사에 사회적·종교적 편견에 기반한 일부 시민의 반대집회가 예상된다는 점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그 동기에서부터 차별적인 조치다. 어떤 집회와 그에 반대하는 대항집회가 예정돼 있고 양자 간의 충돌이 우려되는 경우, 질서유지의 책임을 지는 공공기관은 집회 그 자체를 금지하거나 지연 혹은 축소시킬 것이 아니라 양자 간의 집회장소, 시간, 집회방법 등을 조정하거나 공간적인 격리 등을 통해 충돌을 예방하고 차단하는 방안을 최우선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서울시는 이러한 인권우선적인 직무방법을 선택하지 않고 합리적인 이유도 제시하지 않은 채 시민위원회에 결정권을 일임함으로써, 집회 주최 측에 부당한 차별과 업무 지체를 겪게 했다. 설사 사회질서의 보호를 위한 사전 대응이라 하더라도, 이를 위해 선택한 방법이 성소수자에 반대하면서 질서를 교란하는 대항집회에 대해서가 아니라 정작 보호돼야 할 성소수자들의 집회에 대한 절차적 통제였다는 점에서 차별적 조처임이 명백하다.

※더구나 2018년까지 19회에 걸친 서울퀴어퍼레이드는 물론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서울광장에서 진행된 네차례의 서울퀴어문화축제 역시 생명이나 신체에 대한 별다른 위해는 물론 사회질서의 침해사례 없이 평화적이고 안전하게 매우 성공적으로 운영돼왔음을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차후에는 서울퀴어문화축제를 위한 서울광장 사용신고를 시민위원회를 통한 부당한 지연 없이 즉시 수리해 인권보장의 원칙에 부합하는 업무처리를 해야 한다. 서울 인권위원회는 서울시장에게 관련 부서를 제대로 지도 관리할 것을 권고한다.


아직도 수리되지 않은 광장 사용 신청

오 시장은 혹 성찰도, 조심도 다 내버리고 오래 묵은 실패한 소신에 다시 붙들렸는가. 오는 7월 15일부터 개최할 예정인 서울퀴어문화축제의 광장 사용 신청을 그는 아직 수리하지 않았다. 신청서를 접수한 6월 9일 기준으로 58일째다. 시민위원회조차 아직 열리지 않았단다. 자신을 돌아보며 10여년의 시간을 지냈다는 오 시장은, 2022년 6월 현재 서울광장 조례의 취지는 물론 서울시 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배반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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