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물원 침팬지' 11년 홀로 두더니, 이젠 5200km 떨어진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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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2.07.07. 오후 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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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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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공원 침팬지 광복이·관순이, '학대 논란' 인도네시아 사파리로 반출…동물보호단체와 시민들은 "서울대공원에서 여생 보내게 해달라" 반발, 이수연 서울대공원 원장 "국민 의견이 반대면, 반출 안 하겠다"]

서울대공원 동물원 유인원관의 침팬지./사진=서울대공원 홈페이지.
2009년 8월 15일, 나는 광복절에 태어났다. 그래서 '광복이'라 불렸다. 낳아준 엄마는 날 돌보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를 대신할 누군가를, 엄마라 믿고 자랐다. 실은 나와는 모습이 아주 달랐다. 그렇지만 날 돌봐준 유일한 존재였다. 2012년 2월 말엔 여동생이 태어났다. 이름은 '관순이'. 엄마는 동생도 돌보지 않았다. 동생도 나처럼, 우리와 모습이 다른 낯선 존재를 엄마라 믿고 자랐다.

두세 살이 될 무렵, 난 다른 친구들과 함께 살기 위해 갔다. 그곳에서 나와 같은 모습을 한 친구들을 처음 봤다. 반가웠다. 하지만 날 경계했다. 같이 지낼 수 없게 되었다.

그 뒤로 무려 11년을 홀로 살았다. 쇠창살이 있는, 친구들과 동떨어진 곳에서.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서. 전시 공간 뒤쪽이라, 누군가는 여길 '뒷방'이라고 불렀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매일 지냈다. 스트레스가 심했다. 나도 모르게 내 털을, 하루종일 쥐어 뜯어댔다.
엄마가 돌보지 않았던 침팬지 관순이는, 사육사가 대신 돌봤다. 사육사를 엄마라 믿었다. SBS TV 동물농장에 출연해 귀엽다고 인기를 끌었었다. 그마저도 잊혀졌고, 이젠 인도네시아의 낯선 사파리로 보내지게 되었다./사진=SBS 스토리 유튜브
동생 관순이도 다를 바 없었다. 8년을 작고 어두운 공간에서, 우리와 다르게 생긴 존재와 함께 살았다. 인기가 많았던 게 무색했다.어릴 땐 TV에 나가 유명 스타가 됐었다. 바나나 먹는 게, 봄이라 꽃을 단 게 귀엽다고 난리였다. 사람들에게 잊히자, 그 기억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느덧 난 13살, 관순이는 10살이 됐다. 평균 생(生)이 보통 50년이니, 37년은 더 살아가야 한다. 엄마는 버렸고, 11년을 홀로 산 내게, 사람들은 이제 5200km 정도 떨어진, 낯선 나라에 가서 살라 한다. 관순이도 함께 보낸단다. 앞으로 우리 삶은 어떻게 될까.



서울대공원 침팬지 관순이와 광복이,'학대 논란' 사파리로 반출


동물쇼나 '학대 논란' 등의 문제가 많이 지적됐던 인도네시아의 '따만 사파리'./사진=서울대공원 블로그
광복이의 시선에서 사실을 토대로 쓴 글이다. 침팬지 관순이광복이는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10년 넘게 살아왔다. 그런데, 서울대공원이 인도네시아에 있는 '따만 사파리'로 반출키로 결정했다.

태어나선 엄마(갑순이)가 돌보지 않았다. 야외 방사장에 사는 다른 침팬지 4마리와는 경계한단 이유로 함께 살지 못했다. 관람객 시선이 닿지 않는 뒤쪽 사육장에서 혼자 11년을 살거나(광복이), 다른 오랑우탄과 살았다(관순이). 그렇게 살았던 두 침팬지에게, 이젠 익숙한 공간, 익숙한 사육사와 떨어져 낯선 나라에 가서 살아가란다.

보내기로 예정된 인도네시아 '따만 사파리'도 문제가 있단 지적이다. 사자·호랑이를 약물에 취하게 해 인간과의 사진 찍기에 동원한 게 폭로됐었다. 코끼리쇼 도중엔 쇠꼬챙이로 학대하기도 했다.

전문가 얘기도 그랬다. 이형주 동물복지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따만 사파리는 운영 목적 자체가 다르다""코끼리 등에 타고, 사자와 사진 찍고, 그런 걸 하기 위해 운영되는 곳"이라고 했다. 동물을 만지고, 타고, 먹이 주고, 사진 찍고, 그런 체험 동물원이란 거다. 이에 대해 서울대공원은 "따만 사파리는 현재 사육 환경보다 훨씬 더 나으며, 침팬지를 이용한 동물쇼는 현재도 없고 향후도 없을 예정이라고 확인 받았다"고 했다.



기존 무리와 '합사' 어렵다지만…수의사 "침팬지가 합사 가장 쉬워"


서울대공원 동물원 수컷 침팬지 '광복이'./사진=MBC
하나하나 짚어보기 위해, 서울대공원 동물원 입장을 상세히 들었다. 광복이·관순이를, 이런 논란의 동물원에 보내려는 이유가 뭔지.

먼저 이유로 든 건, 기존 무리(침팬지 4마리)와 합사가 어렵다는 거였다. 서울대공원 측은 "기존에 내부 사육사는 물론, 외부 전문가 자문을 통해 합사 시도를 했으나 광복이, 관순이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못 했다"고 했다.

그런데 침팬지는 '무리생활'을 해야 하는 동물이므로, 두 침팬지의 복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반출을 결정했단 거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침팬지가 합사가 잘 되는 동물이라고 반박했다. 최태규 수의사(곰보금자리프로젝트 대표)"침팬지는 동물 중 합사가 잘 되는 동물종 중 하나"라며 "서로를 불합리하게 다치게 하거나 죽일 가능성이 낮다"고 설명했다.

실제 미국 등에서는 실험실에서 살던 침팬지를, 생추어리(동물이 본연의 모습대로 살아가게끔 보호하는 구역)에 모아서 키우는데, 합사가 안 되는 애들은 많지 않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최 수의사는 "(서울대공원에서) 광복이, 관순이 합사가 잘 안 됐다고 하는 건, 합사 시도가 제대로 안 됐거나 의지가 없었던 것"이라고 했다. 예컨대, 합사는 서로 기분 좋은 상황에서 맛있는 걸 먹거나 재밌는 놀이를 하며 연결하는 게 중요하단 얘기다. 그는 "광복이와 관순이를 중성화해서 합사를 시도하면, 성공 확률이 70% 이상은 된다고 본다"고 했다.



침팬지 중성화는 안 된다?…"동물원 협회, 번식시켜야 하니 중성화 부정적"


서울대공원 동물원의 침팬지 야외 방사장에 설치된 타워. 다른 침팬지 4마리가 여기서 자유로이 매달릴 때, 광복이와 관순이는 그러지 못했다./사진=뉴시스
서울대공원의 또 다른 반출 논리는 '침팬지에 대한 중성화 반대'다. 기존 침팬지 4마리와 광복이·관순이를 합사하려면 번식을 막기 위해 중성화를 해야 하는데, 침팬지들에게 좋지 않단 얘기다.

그러면서 서울대공원 측이 이유로 든 건 AZA(미국동물원수족관협회) 소속 SSP(동물관리 및 보전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의견이다. 서울대공원 측은 "(SSP 코디네이터가) 수컷 침팬지의 정관절제술 및 거세에 대해 반대를 하고 있으며, 암컷에 대해서도 약물을 이용한 일시적 피임법이 사용되고 있어 영구적인 사용 방법은 아니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최 수의사는 "AZA가 아니라 종 보전을 위해 만든 SSP 의견이며, 종 보전 역할을 하는 곳이라 중성화는 대체로 부정적"이라고 했다. 김 대표도 "AZA 지침이 좋은 동물원 교본이라 생각하지만, 그 또한 동물원 협회일 뿐"이라며 "번식으로 동물 자원을 확보해야 하니 중성화를 반대하는 건 당연하다"고 했다.

또 최 수의사는 SSP 코디네이터가 서울대공원에 보냈단 메일 자체에 대해서도, 중성화를 하지 말란 얘기가 아니라며 반박했다. 그는 "(메일 확인 결과) 중성화를 하지 말란 게 아니라, '고환 적출'에 대해서만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수컷 중성화도 고환 적출 뿐 아니라 정관 절제술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개나 고양이도 다 중성화해서 키우는데, 21세기에 할 얘긴 아니다"라고 했다.
원숭이, 침팬지의 정관수술 및 임플라논 시술 계획이 담긴, 서울대공원 내부 결재문서./사진=서울시

이형주 어웨어 대표도 "암컷 임플라논(피임 시술)은 다른 종 동물도 주기적으로 하는 걸로 알고 있다"고 했다. 실제 서울대공원 결재 문서를 살펴본 결과, 기존 무리에 있는 침팬지 까미도 2016년과 2020년에 임플라논 시술을 받았고, 2023년 2월에 또 예정돼 있었다.



멸종위기라 '종 보전' 필요하단 논리에…"동물원 생존하려 종 보전 내세워"


동물보호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14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서울대공원 침팬지 남매 광복·관순이의 반출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스1
서울대공원이 광복이·관순이 반출을 위해 내세운 마지막 논리는 '침팬지 종 보전'이다. 침팬지가 멸종 위기종이고, 서울대공원 내의 기존 무리와는 '근친'이라 번식할 수 없으니, 다른 동물원에 보낼 수밖에 없단 얘기였다. 동물원의 종 보전 역할을 강조한 거다.

이에 최 수의사는 "종 보전이라 하면 번식시켜 원래 서식지에 보내는 건데, 그럴 가능성은 없다""동물 종 보전이 아니라 동물원 보전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이어 "멸종위기가 되는 건 침팬지를 잡아가고 서식지를 파괴하기 때문인데, 동물원에서 번식을 안 한다고 멸종위기가 되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김보경 대표는 "동물원이 종 보전을 중요 역할로 내세우는 건, 예전 모습으로는 향후 동물원이 생존할 수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동물복지에 대한 시민들 의식 수준이 높아져 동물원에 점점 부정적이기에, 보전 역할을 강조한다는 얘기다.

이형주 대표도 "증식이 곧 보전은 아니며, 사육 상태의 증식이 종 보전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 검토한 뒤, 타당성이 있을 때만 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그는 "(광복이, 관순이를 보낸다는) 따만 사파리는 동물원 보전 활동 중 가장 기본적인 교육 기능도 안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서울대공원 원장 "토론회 열고, 국민 의견이 '반대'라면 안 보낼 것"


14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하는, 서울대공원 침팬지 남매 광복·관순이 반출을 반대하는 이들. /사진=뉴스1
광복이·관순이 반출을 반대하는 동물보호단체와 시민들 목소리는 여전히 높다. 김보경 책공장더불어 대표와 시민들은 반출을 반대하는 집회를 아홉 차례나 모여서 했다.

서울시의회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나왔다. 유정희 서울시의회 의원(더불어민주당, 관악4)은 지난달 21일 제308회 본회의에서 "따만 사파리는 관람객들이 하마 입에 플라스틱을 넣고, 사슴 입에 술을 붓던 곳"이라며 "관순이, 광복이는 여기서 태어나 모든 생활패턴, 기후, 사육사에 적응하며 자랐는데 기후 환경이 전혀 다른 먼 나라로 보내는 게 올바른 건지 모두에게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서울대공원 측은 기존 계획대로 반출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 시기를 묻자, 김세곤 서울대공원 동물기획과장은 "(반출하더라도) 절차가 생각보다 까다로워 시기가 언제쯤 될지 정확히 말하기 어렵다. 올해는 넘길 것 같다"고 예측했다.

다만 이수연 서울대공원 원장은 4일 머니투데이와의 통화에서 "(반대 목소리가 많아) 토론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라며 "국민 컨센서스(의견)가 반대일 경우 보내지 않겠다"고 여지를 두었다. 시민들과 동물보호단체가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면담도 요청했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침팬지 광복이./사진=서울대공원 유튜브
끝으로 광복이, 관순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냐는 물음에 김보경 대표는 이렇게 답했다.

"얼마 전에도 서울동물원 유인원관에 갔습니다. 사람들이 '정말 침팬지다, 오랑우탄이다'하며 2~3초 서 있더라고요. 이런 상황에서 동물원의 교육적 기능 어쩌고 하는 건 위선이라 생각해요. 체험 동물원에 갈 뻔한 걸 시민들이 지켜줘서, 서울동물원에서 늙어가는 이야기가 훨씬 기억에 남고 교육적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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