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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비망록 ①] 조주빈 징역 40년을 이끌어낸 사람들

‘박사방’을 발견하자 확신했다…“이건 잡아야 한다”
등록 2020-11-26 13:23 수정 2020-11-27 04:22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가 2019년 1월30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앞에서 죽음에 이른 불법·비동의 촬영물 유포 피해자를 기리며 ‘이름 없는 추모제’를 진행하고 있다. 1년여 지나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이 알려진 뒤에야 디지털성범죄는 중대한 범죄로 대부분 국민에게 인식된다. 한겨레 김효실 기자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가 2019년 1월30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앞에서 죽음에 이른 불법·비동의 촬영물 유포 피해자를 기리며 ‘이름 없는 추모제’를 진행하고 있다. 1년여 지나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이 알려진 뒤에야 디지털성범죄는 중대한 범죄로 대부분 국민에게 인식된다. 한겨레 김효실 기자

<한겨레21>이 디지털성범죄를 정리하고, 앞으로 기록을 꾸준히 저장할 아카이브(stopn.hani.co.kr)를 엽니다. 11월27일 나오는 <한겨레21> 1340호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이후 1년동안 일궈온 성과와 성찰, 그리고 여전히 남아 있는 고민으로만 채웁니다.

주목하지 않았던 사건이 있다. 단서가 있다. 고통이 있다.

2018년 6월 전아무개는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웹카메라를 해킹해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훔쳐봤다. 여성 몸이 담긴 사진 167장을 트위터에 올렸다. 형은 유예됐다.(집행유예 3년) 범죄 전력이 없다는 점을 참작했다.(대구지법, 2018고단2006) 2020년 사람들은 전아무개를 ‘와치맨’으로 부른다. 집행유예 기간, 텔레그램 ‘고담방’을 만들었다.

2019년 8월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은 이아무개에게 징역 3년형을 선고했다. 16살 피해자를 성폭행했다. 그 장면을 찍어 메신저 라인 대화방에 실시간 전송했다. ‘성명불상자’의 지시를 따른 것이라고 했다.(대구지법 김천지원, 2019고합41) 수사기관은 성명불상자에 관심 두지 않았다. 성명불상자는 ‘갓갓’ 문형욱. 그는 텔레그램 n번방을 만들었다.

2019년 9월 어느 날 밤 10시께, 서울 동작경찰서에 신고가 접수됐다. ‘스폰서 아르바이트 면접을 핑계로 나체 사진을 요구했다. 보내준 사진으로 협박당하고 있다.’ 서대문서, 용산서, 강원도 동해서에도 비슷한 신고가 접수됐다. 비슷했지만 한데 모아보진 않았다. 낱낱이 흩어진 가해와 피해가 경찰서 곳곳에서 수사 중인 사건, 그저 흔한 사이버 성범죄로 쌓여가고 있을 뿐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1. 두려움: 2019년 11월
플로는 선생이 자기가 할 일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하지만 선생은 알았다. 아주 잘 알았다. 그녀는 쉬는 시간이 되면 문을 걸어 잠그고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상관하지 않았다. -앨리스 먼로, <거지 소녀>

“바로 이 자리에서요.” 서울지방경찰청(시경) 1층 카페 ‘서경’은 웅웅대는 커피 기계 소리, 사람들 목소리로 여느 때처럼 소란하다. 천장 높은 카페에서 울림을 더한 소리는 다른 소리와 뒤섞이다가 곧잘 제 방향을 잃는다. 유나겸 시경 사이버성폭력 수사1팀장이 목소리를 돋운다. 1년 전 이 자리, “어떤 계기”를 떠올리려는데… “민상아 이거 나눠 먹자” 최고참 조승노 수사관은 청포도에이드를 팀 막내에게 따라주느라 여념 없다.

2020년 가을 이들의 모습은 지극히 심상하다. 유 팀장과 조 수사관 두 사람은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성폭력 수사1팀(이하 시경 수사팀)에서 2년쯤 같이 일했다. 현장 경험이 많은 남궁선·김민규 수사관, “찌르면 기름 나올 것 같은 업무 기계” 강길병 수사관, 1990년대생인 최지훈·이민상 수사관까지 한 팀이다. 대체로 사이좋다. 가끔 싸운다. 싸운 얘기를 웃으면서 한다.

1년 전 이 자리로 돌아온다. 2019년 11월15일 오후 5시, 하늘은 어둑하고 공기는 눅눅하다. 곧 비 내릴 모양이다. 유나겸 팀장 곁으로 김완·오연서 <한겨레> 기자, 양재원 당시 국무총리 비서실 정책민원팀장이 둘러앉았다. 김완 기자는 나흘 전 텔레그램 ‘공식링크 ○○○○’방 기사를 썼다. 성착취물 텔레그램 방 링크를 퍼나르는 곳이다. “처음에는 그냥 일간베스트저장소 비슷한 괴상한 문화라고 생각했다.” 제보 따라, 링크 따라 방 곳곳을 훑으며 황당함은 경악에 이른다. 이 방 저 방에서 관전자들이 자주 읊던 그 방, ‘박사방’에 이르러 확신한다. “이건 잡아야 한다.” 손에 쥔 스마트폰, 6인치 화면 속에 실시간으로 지옥이 펼쳐지고 있었다. 여기 아닌 어딘가, 낯선 모습인 것 같았다. 또한 바로 여기, 익숙하게 보아온 악들이 녹아 있는 것도 같았다. 줄 세우고, 괴롭히고, 조롱하고, 과시하고, 혐오하며 아우성쳤다.

서열 갈랐다. 참여자들은 경험치 포인트에 따라 ‘공직자’ ‘상류층’ ‘시민’ ‘중산층’ ‘한부모 가정’ 따위로 등급이 매겨진다. 시민등급 이상이면 ‘시민방’(시민의회 혹은 노아의 방주)에 참여해 열성적인 활동(제작과 공유)을 대가로 성착취물을 본다. 돈을 받고(고액방) 성착취물을 공유한다. 짧게 편집하거나 시간이 지난 영상은 무료방(일반 박사방 등)에서 홍보용으로 쓴다.(서울중앙지검, 박사방 운영자 강훈(부따) 공소장)

조롱했다. 피해자를 몰아세우는 과정을 하나하나 중계했다. 한 사람을 파괴하는 과정을 모두 함께 기다렸다. 즐겼다. 발 들인 모두가 공범이었는데, 모두 같이 저지르는 범죄라 “n분의 1만큼만 죄책감을 가진 듯도 보였다.”(김완 기자) 피해자를 닦아세우며 관전자의 아우성에 맞춘 성착취물을 제작했다. 과시했다. 서로가 가진 성착취 영상의 희귀성을 강조하며 경매 부쳤다. 오연서 기자는 전문가 조언을 받아 이 짓을 ‘디지털성착취’라고 이름 붙였다.

김완 기자는 경찰을 소개해줄 이를 찾다가 친분이 있던 양재원 팀장한테 먼저 메시지를 보냈다. 사회문제를 두루 다루는 총리실 정책민원팀장이다. 전직인 국회 보좌관 시절부터 경찰 조직에 관심이 많았다. 기자들 사이에 밤낮 가리지 않는 성실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갈무리한 범행을 양 팀장한테 밤늦게까지 전송했다. 그는 말했다. “토할 것 같아요.” 이튿날 양 팀장은 경찰에 연락했고, 경찰청은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텔레그램 성착취 피해자와 가해 구조를 짚은 2019년 11월25일치 한겨레 1면. 한겨레 자료

텔레그램 성착취 피해자와 가해 구조를 짚은 2019년 11월25일치 한겨레 1면. 한겨레 자료

“잘 나와봐야 2년6개월 징역형”

토할 것 같았다. 양재원 팀장도, 다양한 사건을 취재해온 김완 기자나 오연서 기자도, 베테랑 수사관들의 첫 느낌도 비슷하다. “토할 것 같았어요.” 뿌리치고 싶고, 인정하고 싶지 않고, 선 긋고 싶다. 영상 속 피해자 모습 때문인 것 같다. “처음에는 영상 속 피해자 눈빛이 계속 머리에 남았어요.”(양재원 팀장) 여성인 오연서 기자는 나에게도 가해질 수 있는 범죄라고 생각했다. 엄마인 유나겸 팀장은 아홉 살 난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의 참혹함에 “토할 것 같았다”.

본능적인 거부감은 당연하다. 다만 돌아보면 이상하다. 모르지 않았으니까. 경북지방경찰청은 ‘갓갓’ 문형욱을 2019년 3월부터 쫓았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와치맨을 9월, 이미 붙잡았다. 서울 시경도 박사방의 존재를 알았다. 기사는 없다. 정부도 별말 없다. 사법부 판결이야 “잘 나와봐야 2년6개월짜리(각주 1)”(김완 기자가 한 지방경찰청에서 들은 말)라고들 생각했다. 대학생 추적단 ‘불꽃’ 정도가 홀로 7월부터 신고하고 기사 쓰며 조바심쳤다.

현실과 지옥, 그러려니 한 혐오와 극단적인 범죄, 흘려버린 것과 중대한 것 사이 어디쯤 경찰과 기자와 총리실 직원이 놓였다. 이내 전 국민이 놓일 자리다. 대체 우리는 어떤 경계를 넘어버린 걸까. “‘현생’의 보통 남자, 인터넷 게시판의 혐오 세력, 텔레그램의 잔혹한 범죄자가 같은 얼굴일 수 있다는 생각”에 김완 기자는 자주 소스라쳤다. 알았지만, 동시에 몰랐던 채 수사하고, 기사 쓰고, 입법하고, 판결하고, 농담하고, 치켜세우고, 비하하고, 혐오했던 모두가 지옥을 쌓는 길목 어디쯤 있었던 것만은 분명했다. 모종의 죄의식과 책임감을 붙들고 경찰, 기자, 공무원은 흩어졌다.

시경 수사팀원 7명 전부 박사방 사건에 달라붙었다. 칠판을 들였다. 수면 시간을 줄였다. 오연서 기자는 피해자와 통화했다. 위축된 목소리로 단답만 하는 피해자가 있었다. 절박한 목소리로 도와달라는 피해자도 있었다. 으레 “수화기 너머 바깥 소음이 섞여 들렸다.”(오연서 기자) 가족에게 알려지는 일만은 피해야 했을 것이므로, 아마도 남몰래 집을 나섰을 것이다. 서로의 안전을 위해 오연서는 휴대전화를 두고 회사 유선전화를 붙들었다. 피해자와 같이 떨었다.

열흘 뒤(2019년 11월25일) <한겨레>는 피해자의 증언, 디지털성착취 범죄 구조를 담은 기획 기사를 내보냈다. 별다른 반응은 없다. 그나마 몇 개 달린 댓글을 본다. “심지어 피해자를 탓하는 댓글이 있어서…”(유나겸 팀장) 시무룩하게 유 팀장은 기사를 두 장짜리 문서로 정리해 과장한테 보고한다. 세상은 어느 정도 다져졌다고 믿어온 틀 안에서 여느 때처럼 소란하다. 여야가 예산안을 두고 다투고, 북한은 해안포 사격을 실시했다. 여성 연예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여느 때처럼 벌어지는 소란이라 ‘대체로 평화롭다’고 적을 법한 날들이 지나간다. 지옥을 곁에 두고서.

[조주빈 검거 비망록 ②] 경찰과 기자를 조롱했던 ‘박사’ 기사로 이어집니다.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9557.html
[조주빈 검거 비망록 ③] 드디어 수갑을 채우다 기사로 이어집니다.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9558.html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고한솔 기자 sol@hani.co.kr

각주 1. 2014~2018년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제작한 혐의로 재판받은 15명 가운데 13명이 30개월(2년6개월)형을 선고받았다.(대법원 양형위원회)

 * 기사에 담긴 소설의 문장은 거장 혹은 전설의 반열에 오른 여성 소설가의 소설에서 따왔다. 각자의 방식으로 여성의 삶을 그려온 앨리스 먼로와 올가 토카르추크는 각각 2013년, 2018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증언들>은 2019년 맨부커상을 탔다. 작가 사후 20여 년 만에 세계 출판계에 알려진 구묘진의 <악어 노트>는 성소수자(LGBTQI) 문학의 전설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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