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llery Hyundai

신성희 : 회화공간

갤러리현대 두가헌
7월 5일 - 7월 30일


“우리는 입체가 되고자 하는 꿈을 갖고 평면에서 태어났다. 평면의 조직과 두께는 공간을 향해 나아가기를 희망하였다.”
- 신성희, 작가노트 <캔버스의 증언>(2005) 중에서

신성희는 한국 현대미술사의 특정 사조에 속하지 않는 가장 독창적인 작가로 평가된다. 그는 구도자처럼 회화의 절대적 공간인 캔버스의 한계를 극복하고 평면과 입체의 일체를 모색했다. 1971년 초현실주의 화풍의 <공심(空心)> 3부작으로 한국미술대상전에서 특별상을 받는 등 주요 공모전에서 두각을 드러낸 그는 1974년 거친 질감의 마대에 마대의 풀린 올과 그림자를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일명 ‘마대’ 회화 연작을 발표하며 재현과 추상, 대상과 회화, 사실과 허상의 관계를 탐색했다.

1980년 파리로 활동 무대를 옮긴 작가는 '회화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아갔다. 그는 허구로서의 회화를 거부하며 평면의 화면에 물리적으로 실재하는 입체감과 공간감을 도입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두툼한 판지를 찢어 콜라주 하거나 종이의 무른 성질을 활용해 일부를 자르고 뜯음으로써 평면이면서 동시에 입체가 되는 역설의 회화를 탄생시킨 것이다. 채색한 판지를 찢어 화면에 콜라주하고 과감한 색채를 도입한 <구조공간> 연작(1983-92), 종이의 일부를 뜯거나 잘라 입체적 형상과 제3의 공간을 완성하는 ‘드로잉’ 작업(1982-1990), 채색한 캔버스를 일정한 크기의 띠로 재단하고 그것을 박음질로 이은 <연속성의 마무리> 연작(1993-97), 그리고 잘라낸 캔버스 색 띠를 틀이나 지지체에 묶어 평면과 입체의 통합을 이룬 <누아주> 연작(1997-2009)으로 작품세계를 전개해 갔다.

《회화공간》전은 10년 주기로 작품세계에 큰 변화를 모색한 신성희의 유쾌하면서 진지한 '실험정신'을 엿볼 수 있는 종이 드로잉 작품에 주목한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에 완성된 종이 드로잉은 훗날 캔버스라는 지지체로 확정되어 작가의 대표 연작인 <연속성의 마무리>와 <누아주>가 탄생하는 기반이 된다. <연속성의 마무리>와 <누아주>가 다채로운 색채와 입체적 형상을 통해 맥시멀리즘을 지향했다면, 그의 드로잉은 미니멀하면서도 작은 디테일을 통해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의 드로잉 작품은 종이에 오일을 발라 무르게 한 다음 이를 뚫고 뜯어서 조각적 형상과 평면 너머의 실제 공간을 만드는 <공간탐색> 연작, 매끈한 종이에 원통의 공간을 그리고 그 안에 형형색색의 덩어리를 넣은 듯이 재현의 정도를 달리하거나, 평면화된 무채색의 추상적 덩어리에 보석처럼 박힌 색색의 파편을 그린 <회화공간> 연작으로 구분된다. 종이의 잘라낸 부분을 접어 입체를 만들고, 잘라낸 부분을 비워 두고 이를 새로운 회화적 공간으로 정립한다. 그림의 지지대를 뚫고 찢는 파괴를 창조적 행위로 전환하는 신성희만의 독창적 방법론을 확인할 수 있다.

《회화공간》전은 종이 드로잉 16점, 캔버스에 석고를 발라 거친 질감을 만들고 그 위에 아크릴 물감의 표현주의적 붓질을 더한 추상 회화 <무제> 연작 3점을 비롯해, <구조공간>, <연속성의 마무리>, <누아주> 연작을 함께 소개하면서 신성희 작품세계의 유기적인 연속성을 엿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