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Hi Seoul과 I·SEOUL·U의 기구한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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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생뚱맞았던 '하이 서울'과 '아이 서울 유'
시간이 갈수록 친숙해져
시정 브랜드에 정치적 굴레 씌우기
브랜드 어디에도 보수와 진보 흔적은 없어
익숙해질만한 하면 바뀌는 브랜드, 이번에는 장수만세

정권이 바뀌면 사람이 바뀌고 정책이 바뀌는 것은 당연하다. 심지어 국방부와 해경의 조사결과가 정권의 부침에 따라 뒤바뀌는 세상이다.
 
국정운영이 이러할진대 광역자치단체의 정책쯤이야 변화무쌍하더라도 관대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잠시 동안이었지만 서울시를 출입하던 2015년 박원순 서울시장이 느닷없이 서울시 브랜드를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서울시 브랜드는 '하이 서울'(Hi Seoul)이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평생 살아온 필자도 서울에 브랜드와 슬로건이 있다는 사실을 그때야 깨달았다.
 
그날 이후, 서울 시내를 다닐 때마다 '하이 서울'을 유심히 보게 됐다. 버스 정류장에 가도 공원에 가도, 공공시설에만 가면 '하이 서울'이 눈을 붙잡았다.
 
서울시 브랜드가 '하이 서울'이라니? 누가 고안했는지 참 영혼없고 성의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지극히 단순하지만 편하고 친숙한 브랜드라는 생각에 긍정지수가 갈수록 높아졌다.
 
그런데, 박원순 시장이 이걸 바꾸겠다고 한 것이다. 그 대안이 아이 서울 유'(I·SEOUL·U)다. 시민공모를 거친 작품이다.
 
기자 간담회에서 '아이 서울 유'를 접한 대부분의 기자들의 첫 반응은 참 생뚱맞다는 것이었다.
 
문법에도 맞지 않고, '아이 러브 유'를 패러디한 것 같아 이 역시 '하이 서울'만큼 성의없이 선정했다는 지적들이 많았다.
 
서울시측은 '너와 나의 서울'이라는 친절한 설명을 곁들였지만 이게 시민들 사이에 인식이 되겠느냐는 우려가 높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 서울 유'는 시민들에게 빠르게 친숙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이 서울 유'가 탄생할 때만 해도 찬성한다는 서울시민의 의견이 11.9%에 불과했지만 6년 만인 지난해 4월에는 응답자의 40% 이상이 '잘 어울린다'고 답했다. '어울리지 않는다'는 응답은 23%에 불과했다. 2019년 서울시 자체조사에서는 '아이 서울 유' 인지도가 86%나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측이 '아이 서울 유'를 폐기하고 서울시 브랜드를 새로 선정하기로 했다. 
태스크포스(TF)팀이 이미 만들어져 가동중이다. 
 
높아진 서울시의 국제적 위상에 맞게 새로운 도시 브랜드가 필요하다는 설명이지만 아무래도 정치적 설왕설래를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아이 서울 유' 폐기와 새로운 도시 브랜드 선정에 재선한 오세훈 서울시장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 힘이 지난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의회 112석 중 76석을 차지해 여대야소가 된 것도 오 시장에게 추진력을 더해 줄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제공

그러나, 이미 서울시민들에게 익숙해진 브랜드를 굳이 예산을 들여 바꿀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는 비판적인 목소리가 많다.
 
새로운 도시 브랜드가 시민들에게 익숙해질 때까지 걸리는 시간과 홍보 비용은 별도다. 서울시내 공공 시설물에 붙여 있는 '아이 서울 유'를 일제히 떼고 새 브랜드를 일일이 붙이는 비용도 적지 않을 것이다.
 
결국에는 전임 시장 치적지우기라는 정치언어가 나올 수 밖에 없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취임하자마자 이명박 서울시장과 오세훈 서울시장의 흔적지우기에 열심이었다.
 
무상급식 문제로 중도하차했던 오세훈 서울시장도 취임하자마자 박원순 시장 지우기에 나섰다.
 
미니 태양광과 노들섬 복합문화공간 사업을 감사하고 고발조치한 것이 대표적이다.
 
정치보복과 비정상의 정상화는 종이 한 장 차이다. '하이 서울'과 '아이 서울 유'라는 말 어디에 보수와 진보의 냄새가 나는지 알 수 없다.
 
도시 브랜드에까지 정치적 의미가 주어지고 정치보복이라는 해석이 곁들여진다면 그런 도시 브랜드는 아예 없는게 낫다.

태어난지 13년 만에 사라진 '하이 서울'과 8년 만에 사라질 위기에 처한 '아이 서울 유'.
 
이들의 기구한 운명에 서울시민들은 새로운 브랜드에 대한 기대감보다 안타까움이 앞선다.
 
익숙해질만하면 교체되고 사라지는 서울시 브랜드, 2023년 탄생할 새로운 브랜드는 부디 '장수만세'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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