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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퀴모 이야기

전국 퀴어모여라 5주년을 생각하며

전국퀴어모여라 2019. 5. 3. 10:27

전국 퀴어모여라 

5주년을

생각하며

 

캔디.D(한국성적소수자인권문화센터)

 

 

 

캔디.D님과 함께 했던 광주방문

처음엔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정말 그랬다.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때, 성소수자 운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 모든 것은 서울에서만 있는 것 같았고, 모든 사람은 다 서울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십 수 년 전에 부산에 어떤 단체가 있었고, 이십여 년 전에 광주에서 빛동인이라는 단체가 있었다는 말은 그냥 글로만 볼 수 있는 전설일 뿐 실체로 손에 잡히지는 않았다.

서울에서 같은 대학을 나온 활동가들도 많았고, 경기도의 같은 지역 출신의 활동가들도 꽤나 많은 것처럼 느껴지던 그 때, 나는 사실 알 수 없는 고립감을 느끼기도 했다. 누구도 나를 고립시킬 의도도 생각도 없는 이 커뮤니티에서 나의 과거는 이미 지워진 것처럼, 혹은 누구의 공감도 얻을 수 없는 쓸모없는 것인 양 느껴지기도 했다.

 

동향의 존재들이란, 같은 지역 출신이라는 것을 넘어 그 지역의 역사, 과거, 현재를 공유하고, 그 역사 안에 존재하는 나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같은 지역이라는 것만으로 공유할 수 있는 감정은 몇 배로 늘어난다.

운동의 감각도 마찬가지이다. 지역의 맥락을 아는 이들과 함께 하는 운동은 전략을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운동이 된다. 특히 성소수자 운동에서 지역의 맥락이라는 것은, 성소수자의 다양한 삶 중 어떤 것에 집중하여 이 지역에서 이야기를 시작할 것인가 라는 것이기도 하기에 더욱 더 중요하다.

 

전퀴모가 중요한 이유는 그런 것이다.

 

우리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우리 동네엔 나 말고 다른 사람은 없는 줄 알았어요”,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를 시작으로, “우리 동네에서 이런 이야기도 할 수 있는 줄 몰랐어요”, “우리 동네에서 이런 행사를 정말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를 넘어 우리 동네에선 이런 것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까지 갈 수 있는 그 시작을 전퀴모는 제공하고 있다.

 

한 단체의 작은 소모임인 전퀴모가 개인적으로, 혹은 함께 모여 전국 각지를 5년 동안 돌았다. 한두 명을 만나기도 했고, 수십 명의 사람들이 만나기도 했다. 5년 동안 어떤 지역에서는 지역 단체가 생겨났고, 어떤 지역에서는 퀴어문화축제가 생겨났다.

 

전퀴모가 지역 성소수자 운동을 이끌어낸 중심이다! 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전퀴모가 있었을 때, 사람들은 전퀴모의 이름을 보고, 전국의 다른 도시 어딘가 에도 성소수자가 있을 것이고, 저런 모임으로 함께 할 수 있을 것이고, 우리가 부르면 누군가 와줄 수 도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상상들이 지난 5년 동안 모여, 수많은 변화를 만들어냈다.

 

사실 어떤 모임도, 단체도 5년을 버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활발히 활동하기도, 조용히 글만 쓰기도 하면서 전퀴모는 5년을 버텨냈다.

 

전퀴모의 수다회에 가서 같은 대학을 나온 사람을 만나고 싶다라고 이야기 했던 나를 기억한다. 그리고 지난 5년이 지나는 동안, 나는 내가 졸업한 학교에서 성소수자 모임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았고, 그들을 만났고, 또한 고향에서 퀴어문화축제가 벌어지는 것을 보았다.

 

전국의 퀴어들은 이렇게 소소하게 만나 커다랗게 연대하며, 개인의 삶과 사회를 바꾸어 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 한켠에는 계속 전퀴모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지난 5년을 축하하고, 앞으로의 5년을 응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