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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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미디어추천
‘과로사’는 전 세계에서 한국, 일본, 대만에만 존재한다. 특히 한국과 대만은 급속한 경제 발전과 일중독을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 인식, 장시간 노동환경이나 청년 세대의 빈곤, 산업재해 인정의 어려움 측면에서 놀랍도록 닮아 있다. 이 책은 노동자 과로 사례를 비롯해 노동자가 과로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를 분석하고 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노동법 및 산재보상 제도의 개선 방안을 제시했는데 이는 우리가 참조해야 할 중요한 문제 제기다. 아울러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나 건강한 노동환경에서 일하기 위해 동아시아 노동자가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연대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작가정보
저자(글) 황이링
黃怡翎
둥우대학東吳大學 정치학과 졸업. 성평등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입법원에 들어간 후 노동자 권익 관련 문제를 접했다. 8년간 국회 보좌관으로 일하며 노동자 권리 쟁취를 돕고 적극적으로 제도 개혁을 추진했다. 2013년 입법원을 떠나 동료들과 대만직업안전보건연대를 조직했고 현재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노동자의 직업 안전과 건강 보장을 위해 전담 기관을 설립하는 데 힘쓰고 있다.
저자(글) 까오요우즈
高有智
국립대만대학교 신문연구소 졸업. 《중국시보中國時報》, 《천하天下잡지》 등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현재는 원주민방송原住民族電視台에 재직 중. 우수저널리즘상, 우순원吳舜文언론상 등을 수상했다.
번역 장향미
2018년 1월 갑작스러운 동생의 죽음 이후 과로사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한국과로사ㆍ과로자살유가족모임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과로사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사회 인식 변화와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여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그리고 우리가 남았다』(공저)가 있다.
작가의 말
대만의 총 노동시간은 여전히 세계 상위권이다. 과로사 사건 역시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전체 노동환경과 직장문화는 더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들을 더 많은 사람이 알고 관심을 가지도록, 그래서 노동자의 과로 현실을 뒤바꿀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고 싸우며 고발해야 한다. 우리는 이 책의 한국어판 출간을 계기로 한국의 경험과 교류하며 함께 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 황이링(저자)
책을 읽는 내내 놀라웠다. 대만의 직장 과로 문제가 한국과 너무 닮았기 때문이었다. 책에 서술된 과로사 사건들이 대만이 아닌 한국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해도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거울에 비춘 것처럼 두 나라의 과로 문제는 소름 끼칠 만큼 똑같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일터에서 노동자들이 다치고 죽는 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난다. 나는 묻고 싶다. 과연 우리는 대만과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가? - 장향미(옮긴이)
목차
- 한국어판 서문
독서 길잡이: ‘붕괴세대’의 과로사를 직시하자
저자의 말
들어가며: 살려고 일하는가, 죽으려고 일하는가
제1부 피로의 흔적
1장 어느 엔지니어의 죽음
2장 가슴 아픈 장례식
3장 무급휴가의 과로 기록
4장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죽어간다
5장 링거를 맞으며 일하는 간호사
6장 깨어나 보니 완전히 달라진 삶
7장 생명을 구하는 영웅의 비애
8장 꿈의 공장 속 고달픈 인생
제2부 제도가 사람을 죽인다?
9장 과로 일터 현장 기록
10장 과로 인정의 머나먼 길
11장 고장 난 과로 보상 제도
12장 세계의 과로 현상
13장 과로 대항 대작전
제3부 과로에서 벗어나기
14장 과로하는데 어쩌죠?
15장 과로 예방 자가 조치
[부록1] 대만 과로 인정 기준 및 절차
[부록2] 대만 근로기준법 제84조 제1항 적용 대상
[부록3] 대만 노동보험 산업재해 급여 내용
추천의 글
노동 착취는 이제 그만!_정야원 대만직업안전보건연대 이사장
과로를 막는 바른 길_황쑤잉 대만여성연대 이사장
과로의 공포에서 벗어나도록_쑨요우리엔 대만노동전선 사무총장
과로가 줄면 삶은 늘어난다_허밍시우 대만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옮긴이 후기
추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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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대만의 과로사 현실과 대응책을 다루지만, 자본주의 세상 전반이 ‘과로의 세계’임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한국 역시 일본과 함께 과로와 산업재해 문제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과로사로 쓰러진 희생자는 물론 그 가족과 친구들이 가슴 깊이 흘리는 눈물이 결코 ‘강 건너 불구경’이어선 안 된다. 그들의 고통이 곧 우리 자신의 고통임을 느낄 때 비로소 대안의 길이 열린다. 일을 위해 삶을 바치는 인생이 아니라 사람답게 살고자 일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이 책을 꼼꼼히 읽고 성찰과 연대의 광장으로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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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처음 읽는데 전혀 낯설지 않다. 과로사 피해 노동자들의 생전 노동환경을 들여다보면 이를 한국이나 일본의 어딘가로 바꿔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 과로를 용인하는 근로기준법, 피해 노동자와 가족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드는 산재보험제도의 복잡함, 그리고 무심함도 마찬가지였다. 과로 문제로 세계 선두를 다투어온 한국?대만?일본의 기업과 정부는 그야말로 서로에게 든든한 동지다. 하지만 세 나라의 노동자?시민 연대운동이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서로의 경험을 살펴봄으로써 과로사가 개인의 불운이나 나약함의 결과가 아니며, 영원히 해결 못 할 문제도 아님을 배운다. 유가족들의 공론화와 노동?시민사회의 투쟁이 없었다면, 이렇게 책으로 나오지 않았다면 더더욱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부디 많은 독자가 이 책을 읽고 자신의 노동을 돌아보며 나아가 세 나라의 동료 노동자?시민과 연대할 수 있기를 바란다.
책 속으로
그는 고통스러워하며 말했다. “매일 출근길에 차에 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그러면 병원에 입원해서 쉴 수 있으니까.” 그 기간의 나날 동안 그는 계속 수면 부족에 시달렸다. 내내 졸린 눈을 비벼가며 애써 부릅뜨고 일해야 했다. 그는 해당 업무 담당자였고 이직하려고 해도 업무를 인계할 사람이 없었다. 회사에 큰 손실을 안기고 싶지 않아 이를 악물고 버틸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누군가는 물을 것이다. “왜 과로사할 때까지 일하는 거야? 이직하면 되잖아.” 그러나 노동자에게 진짜 선택의 자유가 있을까? 우리는 사건들을 관찰하면서 노동시장이 자유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보이지 않는 사슬로 노동자를 꽁꽁 묶어둔 현실을 보았다. 낮은 위치에 있는 노동자일수록 이동할 수 있는 유동성은 더욱 부족했다. 사실 노동자가 과로하는 환경에서의 생활이란 외줄 타기와 같다. 조금만 삐끗하면 바닥없는 심연으로 떨어지고 과로 질병에 걸린다. 39~40쪽
쉬샤오빈은 침대에 눕지 않았었다. 그는 밤새 컴퓨터 앞에 엎드려 있었다. 컴퓨터는 여전히 켜진 채였고 책상 위에는 문서들이 가득 널려 있었다. 아버지가 급히 샤오빈을 흔들어 깨웠다. 아무리 흔들어도 샤오빈은 엎드린 채였다. 그리고 영영 깨어나지 않았다. 이미 맥박과 호흡이 없었다. 너무 늦어버렸다. 일어나 세수할 틈도, 작별할 새도 없었다. 다시는 아버지에게 아침 인사를 할 수 없다. “저는 아들을 잃었어요.” 급히 병원으로 데려갔으나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아들의 생명을 구하지 못했다. 의사가 사망선고를 내리던 그 순간 아버지는 무너졌다. 그는 병원 바닥에 꿇어앉아 큰소리로 울부짖었다. 가게 문을 닫고, 재취업에 실패하고, 냉소와 조롱을 받으면서 힘들어도 모두 버텨냈던 그인데, 그 순간 그는 오래 참았던 마음속 비통함을 모두 쏟아냈다.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하늘이 이럴 수 있는지. 그의 아들은 마지막까지 열심히 일하느라 침대보 언저리에도 닿지 못하고 컴퓨터 책상에 엎드린 채 결국 세상을 떠났다. 54~55쪽
“다들 똑같이 야근하는데 아무도 안 죽었어요. 당신네 자식만 죽었습니다.” 쉬샤오빈의 가족이 난야테크놀로지와 출근기록의 인정을 다툴 때, 교섭 과정에서 회사 측 대표가 이런 무정한 말로 응대했다. 한 글자 한 글자가 피가 맺히도록 가족의 가슴에 새겨졌다. 71쪽
집안에 경제적 부담이 지워지는 걸 안 순간 학업의 길을 포기하고 군에 입대했고 취업해서 돈 벌 날만 기다렸다. 제대 후 집안에 돈이 급히 필요했기 때문에 좋아하는 일을 천천히 선택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일 해본 경험도 부족하니 선택의 폭이 넓지 않던 차에 보안 업무는 나름 최적의 취업 기회였다. 이렇게 곧장 과로 인생으로 들어서서 되돌아갈 수 없는 길에 서게 되리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다. 아웨이는 매일 12시간 넘게 일했고 휴가도 드물었다. 매일 퇴근 후에는 녹초가 되어 그저 자고 싶을 뿐이었다. 일을 제외한 다른 여가생활도 거의 없었다. 그는 자신만의 작디작은 생활반경 속에서 이렇게 지냈다. 쓸쓸한 장례식은 그의 삶의 고뇌와 적막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였다. 90~91쪽
아롱이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묵은 담배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해당 주임은 제멋대로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피워물고 아롱을 흘깃 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아롱은 서둘러 다가가 온 이유를 설명했다. 주임은 그제야 공문을 받아 즉석에서 몇 장 뒤적이더니 무성의하게 내뱉었다. “못 알아들어요? 당신 형은 담배 피우다가 죽은 거라고!” ‘담배 피우다 죽었다’는 그 말에 가족들은 분통이 터졌다. 분명히 부검의가 아궈의 몸을 부검하면서 장기간의 피로와 과도한 스트레스로 사망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고, 성대병원 역시 ‘과로사’ 가능성을 인정했는데 노동보험국은 어떻게 일언지하에 ‘흡연으로 인한 사망’으로 결론지을 수 있는지. 사실상 노동보험국은 애초에 자료 수집을 대충했을 뿐만 아니라 판단의 근거도 ‘직업 촉발’을 과로 인정으로 보는 정신에 위배된다. 120~121쪽
2012년 3월 사진 한 장이 대만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그것은 의료업무 스테이션에 엎드린 간호사의 사진이었다. 염색한 긴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은 뒷모습은 아주 어려 보였고 그의 팔뚝에는 링거 바늘이 꽂혀 있었다. 몸이 좋지 않은데도 여전히 근무지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사진이 퍼지고 네티즌의 열띤 토론이 일었다. 어떤 이는 근무지를 굳건히 지키는 정신이 존경스럽다고 하고, 어떤 이는 간호사 업무 스트레스가 과중하며 부담이 과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단번에 간호사의 업무환경, 가혹한 노동조건, 간호인력 부족 등의 문제가 잇달아 도마 위에 올랐다. 이 사진은 신문에도 실렸다. 당사자는 가오슝의 간호사로 24세의 젊은 여성이었다. 응당 자유롭게 날아올라야 할 청춘의 삶인데, 날개 꺾인 천사가 되었다. 얼마 후 이 간호사가 말기 암에 걸렸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3주 후 세상을 떠났다. 수많은 네티즌이 안타까워했고 친구들은 페이스북에 추모의 글을 남겼다. “이제 아프지 마. 하늘나라에서 아름다운 천사가 되렴.” 164~165쪽
나는 목숨과 맞바꾼 일의 대가가 이토록 보잘것없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노사 쌍방이 자원에 현격한 차이가 있는 구조 아래에서 결국 작은 새우는 큰 고래에 대항하기 어렵고 개별 노동자는 큰 회사와 의료재단에 대항하기 매우 어렵다. 제도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노조 조직이 더 강해지지 않는다면 공평한 정의는 실현되기 어렵다. 다행히도 자매의 부모님 모두 안정을 찾고 있는 상태다. 오래지 않아 또 쑤?의 문자를 받았다. “동생 일을 겪으면서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았어요. 저도 만약 능력이 있다면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쑤?은 기회가 닿으면 노동단체 활동가가 되고 싶다고 한다. 그의 말투는 여전히 강인하다. 마치 한 송이 해바라기 같다. 182쪽
산업재해 발생은 항상 갑작스러워서 손 쓸 수 없게 마련이다. 일단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노동자 개인의 피해뿐만 아니라 한 가정에도 어둠이 드리운다. 과로 관련 직업병은 또한 특수성이 있다. 일반적으로 기계 끼임, 공사장 추락 등 업무상 사고는 업무와의 인과 관계 판정이 상당히 명확한 것과 달리 뇌심혈관 질병의 발생 원인은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인정의 어려움이 증가한다. (...) 긴 시간이 소요되는 인정 과정은 노동자의 가정을 무너뜨리기 십상이다. 피해 노동자는 대개 가정의 주요한 경제 수입원이기 때문에 일단 상해를 입거나 병으로 쓰러지면 가정 경제는 즉시 곤경에 빠져든다. 막대한 의료비용까지 더해진다면 더욱더 설상가상이다. 202~203쪽
서양 국가에서 비록 1950년대부터 업무 스트레스와 심혈관질환의 관련성을 보여주는 연구가 많았지만, 심혈관질환 촉발 요인이 상당히 다양했고 직장문화에 지나치게 긴 노동시간이 거의 나타나지 않으며 대만 과로사의 노동시간과 상황이 달라 업무 스트레스가 심혈관질환을 촉발하는 주요 원인임을 인정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서양 국가 정책은 심혈관질환을 직업병 범위에 포함하지 않았다. 세계 각국을 살펴보면 현재 과로로 야기된 뇌심혈관질환을 직업병 범위에 포함하는 나라는 일본, 한국, 대만뿐이다. 한국에서도 과로 문제는 상당히 심각하다. 한국의 장시간 노동 실태는 세계적으로도 상위권이다. 대만과는 상위 3등 안에서 각축을 벌였다. 333쪽
노동자의 재해 발생을 예방하는 것은 본래 고용주의 책임이다. 재해가 발생하면 보상을 받는 것 역시 노동자의 권리다. 스스로 위험을 부담할 필요가 없다. 노동자의 권리 의식이 부족한 데다 노사 쌍방의 권력이 대등하지 않다는 현실이 더해져 노동자는 감히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권리는 늘 무시되고 끊임없이 침해당한다. 그래서 노동자는 여러 방면에서 힘을 내 자기 권익을 지켜야 한다. 노동정책 제도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 온라인 서명, 투고와 발언, 능동적인 고발, 노동 관련 시위 참여 혹은 지원 활동, 더 나아가 노동조합에 가입해 조직적으로 사회 문제에 참여하고 더 큰 힘을 모아 권리를 신장해야 한다. 382~383쪽
물론 사람의 손발이 잘리고 즉시 목숨을 잃게 만드는 위험은 대폭 줄었지만, 이를 대체한 장시간, 재량근로제의 노동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서로 다른 영역에서 노동자는 만성 질병의 위험을 감수하며, 불행하게도 피해를 보면 복잡한 의학진단과 치료, 길고 불확실한 산업재해 인정 및 법률 소송과 마주해야 한다. 과거에 우리는 목숨을 파는 노동을 ‘소가 되고 말이 된다’라고 말했다. 지금은 ‘간을 팔고 신장을 판다’라고 한다. 시대의 진보는 단지 즉각적인 외과수술에서 만성 처방전으로 옮겨간 듯하다. 그러나 심신을 해한다는 본질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420쪽
출판사 서평
노동자에게 ‘선택의 자유’는 없었다
장시간 노동, 저임금 착취로 쓰러진 이들의 흔적
메모리 반도체 제조회사 엔지니어인 쉬샤오빈은 매일 밤 11시가 넘도록 야근했다. 신입사원 월급이 4만 위안인데, 야근 수당을 합하면 9만 위안이 될 정도였다. 교통사고로 입원해 있는 동안에도 원격으로 업무를 계속했고, 승진한 후에는 ‘재량근로제’를 적용받아 퇴근 후나 휴일에도 24시간 대기하며 일을 처리했다. 어느 날, 출근 시간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는 아들의 방에 들어가 보니 쉬샤오빈이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밤새 회사 일을 하던 컴퓨터는 켜진 채였고, 그는 침대 근처에도 가지 못한 채 2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환경미화원인 홀어머니를 둔 아웨이는 교대근무의 보안요원이었다. 매일 12시간 넘게 일했고 한 달 휴일이 6일뿐이었지만, 초과근로수당이 없고 월급은 3만 위안(120만 원)을 넘지 못했다. 월 노동시간이 288시간에 이르자 지칠 대로 지친 그는 얼마 안 되는 휴가를 써 가며 노동사무국, 타이베이시정부에 조정을 신청했고 노동보험국, 감찰원에도 고발하고 제보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회사의 보복을 당해 괴로워하던 그는 근무 중 뇌졸중으로 쓰러져 22일 후 결국 사망했다. 향년 29세였다.
오늘날 도시화, 산업화, 과학기술 고도화로 눈부시게 발전한 대만의 모든 산업 유형과 직종에 과로의 함정이 은폐되어 있다. 기업들은 더 싸고 편리한 착취 대상을 찾았고 청년세대는 저임금과 빈곤에 내몰렸다. 전체 노동조건은 계속 하락하고 있으며 갓 직장에 들어간 젊은이가 더 쉽게 산업재해를 당하고 사망에 이른다. 위의 사례처럼 이 책에 등장하는 젊은이들은 전력을 다해 일했지만 고도의 착취가 벌어진 직장에서 뜻밖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이를 추적한 저자의 말에 따르면 과로는 노동자 개인이 대항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한 일터만의 문제도 아니다. 과로는 대만의 사회 문제이고, 이는 과로 문화가 여러 직종에 견고하게 뿌리내린 와중에 노동 정책 또한 열악했던 결과라는 분석이다.
국회 보좌관을 지내며 과로사 사건을 접하게 된 저자는 유가족들을 만나 사건이 산업재해 승인을 받을 수 있도록 힘썼고, 이후 노동자 안전을 위한 단체를 조직해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이 책의 1부에선 과로사 노동자의 유가족과 동행하며 영정사진으로 처음 만난 이의 구체적인 생전 ‘과로’의 모습을 묘사했다. 낮은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선택의 자유’란 없었음을, 과로하는 환경에서의 생활이란 조금만 휘청해도 바닥없는 심연으로 떨어지는 외줄타기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과로의 섬’의 운명을 바꿀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닮았기에 더 서글픈 죽음의 형태 - 한국, 일본, 대만에만 있는 ‘과로사’
너무 많이 일하고 너무 많이 죽는 구조를 고발하다
애초에 장시간 근로 형태를 인정하지 않고 직장문화에서도 지나치게 긴 노동시간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 서양 국가와 달리, 과로로 야기된 뇌심혈관질환을 직업병 범위에 포함하는 나라는 한국, 일본, 대만뿐이다. 즉, ‘과로사’는 세계에서 이 세 나라에만 있다. 일찍이 과로사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예방책을 마련한 일본과 달리 한국과 대만은 여전히 연간 노동시간이 2천 시간에 육박하는 초장시간 노동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세계 수위를 다투고 있다. 그래서 이 책에 등장하는 대만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환경은 한국 독자들에게 낯설지 않다.
‘과로사’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고 보상 제도를 가장 먼저 정비한 일본처럼 한국과 대만의 과로사 규모는 뇌심혈관질환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은 숫자로 짐작한다. 대만 노동보험국이 최근 9년간 심사한 과로 사건은 679건이고 그중 263명이 사망했다. 이에 따르면 5일마다 한 명이 과로로 발병하고 2주마다 한 명이 과로로 사망한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한국에서 뇌심혈관질환 사망이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사례는 2019년 503명, 2020년 463명이다. 까다로운 승인 절차를 돌파하고 보상에까지 이른 경우만 따져도 매일같이 한 명 이상 과로로 죽는 셈이다. 업무상 재해로 승인되는 비율이 신청 건수의 절반이 안 되고, 산재보험을 적용받지 않는 광범위한 직업군을 고려하면 과로사가 얼마나 많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코로나19 이후에는 배달 노동자의 잇단 죽음이 과로 문제를 환기하고 있기도 하다. 과로를 양산하는 한국과 대만의 노동환경, 사회적 조건을 들여다봐야 할 이유다.
이 책은 2부 ‘제도가 사람을 죽인다?’에서 노동환경과 관련 제도의 문제를 자세히 살핀다. 연간 총 노동시간 2,033시간, 게다가 탄력적으로 관리되어 노동시간 증명이 어렵고 은폐되는 현실도 꼬집는다. 교묘한 방식으로 휴일을 빼앗거나 법정 노동시간 상한에 직종별 예외를 두어 사실상 기업 재량에 맡긴 것도 과로의 주범으로 지목됐다. 기업이 이윤을 위해 필사적으로 인력을 줄이거나 비정규직 노동자로 대체하는 모습 또한 우리 현실과 겹친다. 고용이 불안한 노동자는 불합리한 노동조건, 장시간 근로와 저임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 책에서 주요하게 다룬 의사와 간호사 사례, 즉 의료계 종사자의 과로도 팬데믹 시대에 더욱 심각해지는 추세다. 기술의 진보는 노동시간을 줄이지 못했고, 오히려 24시간 서비스업의 증가, 인터넷과 휴대폰 연결로 더 많은 시간 일에 얽매이게 만들었다.
더 많은 노동자가 점점 더 많이 일하다 쓰러지는 현실에도 복잡한 직업병 인정 기준, 실제 노동시간 자료 입증의 어려움, 전문가마다 다른 판단 준거 등 과로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기까지의 과정은 험난하다. 어렵사리 직업병으로 인정받아도 손해배상, 복직 협상, 재활 등의 다툼을 포함해 또 다른 고난이 시작된다. 저자는 대만의 산업재해 보상 제도와 실제 현장에서의 차이를 지적하며 법이 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여전히 부족한 수준의 산업재해 보상, 끝내 이를 인정하지 않고 노동자와 가족을 기나긴 소송으로 끌어들이는 기업, 책임을 회피하고 과로 예방에 소극적인 정부의 태도는 모두 우리 현실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비슷하기에 더욱 뼈아프다.
“과로를 끝내자, 일이 삶을 짓밟게 내버려 두지 말자”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하기 위한 연대의 손 내밀기
“그만두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혹사당하고, 죽지 않으면 그만둘 때까지 혹사당한다”는 말이 대만 노동자들의 유행어라고 한다. 저자는 다음 차례에 쓰러질 노동자가 우리 주위에 있을지 모른다며 이 목숨들을 구할 방안을 모색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시간 단축이다. 연간 총 노동시간을 1,800시간 이하로 점차 줄이자는 주장이다. 근로감독 강화도 급선무다. 처벌이 아닌 개선을 권하는 수준의 근로감독은 대만의 기업이 30년에 한 번 조사를 받을까 말까 한 형식적 수단으로 전락했다. 노동시간 제한의 뒷문을 활짝 열어준 근로기준법 제84조 제1항, 즉 특정 직군에서는 노동시간 상한을 두지 않는다는 조항은 당장 폐기되어야 할 것으로 꼽았다. 이 조항 때문에 보안요원, 수술실 간호사, 승무원 등이 과로사로 내몰렸다. 과로 인정 기준 완화와 산재 보상 제도의 정비 등 우리에게도 유효한 여러 제안을 대응책으로 실었다.
3부 ‘과로에서 벗어나기’는 과로에 대항해 건강과 안전을 지키고 나아가 노동자 의식을 높여야 한다는 조언이다. 저자는 각 개인의 작은 혁명으로 건강하고 안전한 노동환경을 세울 수 있고, 이를 위해 궁극적으로 노동자의 집단적인 힘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되며, 일이 목숨보다 가치 있지는 않다는 호소는 대만과 흡사한, 아니 오히려 더욱 심하게 과로 문제를 겪고 있는 우리가 귀담아들어야 할 말이다.
이 책을 번역한 장향미 씨는 온라인 강의업체에서 일하던 동생을 과로로 잃고 2년여 간 싸워 산업재해 승인을 받아낸 유가족 장본인이다. 한국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모임 회원으로 2019년 아시아직업환경피해자네트워크 컨퍼런스에 나가 저자 황이링을 만났고, 그 자리에서 건네받은 〈과로의 섬〉의 한국어 번역을 결심했다. 그는 “한국과 꼭 닮은 대만의 과로사 실태를 다룬 책을 번역하면서 한국 사회의 과로사 문제를 상기시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책의 저자와 번역자처럼 유가족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그들을 일으켜 세우는 사람, 다음 사람이 생기지 않기 위해 애쓰는 이들을 비롯해 과로 문제의 심각성을 계속 알리고 노동자가 연대해 과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외치는 이가 많아질수록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을 실현할 길이 열릴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행동하지 않으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행렬에 동참하자. 자신을 위해서, 또한 다음 세대를 위해서 과로를 끝내자. 일이 삶을 짓밟게 내버려 두지 말자.”(35쪽)
기본정보
ISBN | 979118603664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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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출시)일자 | 2021년 06월 09일 | ||
쪽수 | 428쪽 | ||
크기 |
129 * 188
* 28
mm
/ 440 g
|
||
총권수 | 1권 | ||
원서명/저자명 | 過勞之島:台灣職場過勞實錄與對策/黃怡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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